과거 각 사회의 존재기반은 지역이었다. 물론 지역간 교류는 존재하였으나 시공간적 거리로 인해 그 본질적인 요소에는 영향을 미치기 어려웠다. 각 지역의 문화는 단절됨으로 고유성과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교통수단의 발달과 IT·통신 기술의 발달은 과거 교류의 장애물이었던 시공간적 거리를 의미없는 것으로 변모시켰다.
사람들은 같은 뉴스를 듣고, 같은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정보원이 동일하니 판단근거도 비슷해진다. 그 결과 획일적인 사고를 한다. 과거 단절됨으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오히려 획일화된다.
획일화는 트렌드와 패션을 생산한다. 이 트렌드와 패션은 일정 기간, 그러나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해 이른바 쏠림현상을 형성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확인 없이, 다른 사람의 행동이 바뀐 신호에 근거했을 것이라 판단하고 타인을 따라 길을 건너는 것이 쏠림현상에 해당된다. 이를 경제분야에 적용시키면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쏠림현상에 의해 폭등해 버블을 형성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 쏠림현상에 의해 가격이 폭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 전제로 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은 일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메르스(MERS)가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불안과 공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불안과 공포의 확대 재생산은 불안과 공포를 향한 쏠림현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의도치않은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2014년 10월 최고의 방역시스템을 자랑하던 미국에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였을 때 그 환자가 라이베리아 출신 흑인이라는 점 때문에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분위기까지 형성된 적이 있었다. 병에 감염되어 피해를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로 바뀌고 그의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잠재적 가해자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전 한 의료기관의 의사가 동료 전문의들에게 "메르스 환자를 받지 말라"는 내용의 메일을 전송했다가 보직 해임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가 '메르스 바이러스 노출자 치료병원'으로 지정한 의료기관이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의무를 지닌 의사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입장을 바꾸어 놓고 의료진들의 입장에서도 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메르스 환자와 접촉해야하는 의료진들이 본인이 사회에서 생각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그 가족들 또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지는 않을까.
얼마 전 메르스의 희생양(?)이 된 삼성서울병원의 식당 게시판에 적혀있는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환자 곁에 있을 겁니다"라는 글이 인터넷에 사진으로 올라왔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료진들을 믿는다. 그들이 세상의 광기어린 공포심을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가슴으로 차분히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제일선에서 그 공포와 맞서는 그들에게 고개숙여 경의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오태형 부경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