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제주도는 건강한 숙주여야 한다

[목요담론]제주도는 건강한 숙주여야 한다
  • 입력 : 2016. 02.18(목) 00:00
  • 편집부 기자 su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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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으름난초, 잔나비걸상, 연가시, 두견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다 홀로는 자기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줄 수 없다. 상대의 도움과 희생이 있어야 하며, 특히 이들은 제주땅에서 살아가는 주인들을 잘 만나야 한다.

32년 만에 폭설을 맞은 한라산은 그야말로 설경의 나라이다. 맑은 날엔 눈이 부실 정도이다. 어리목 숲길을 오르다 보면,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서어나무가 꼭대기에 푸른 가지를 한 아름 안고 하늘을 보고 있다. 이 푸른 가지는 겨우살이이다. 말 그대로 겨우 살아가는 생명체이다. 서어나무는 자기 잎이 떨어진 자리에 겨우살이가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 서어나무는 스스로 잎을 통하여 광합성도 하고, 뿌리를 통해 양분과 물을 흡수한다. 겨우살이는 광합성은 할 수 있지만, 뿌리가 없다. 그러니 살아있는 나무에 의지해서 그 숙주(宿主)로부터 양분을 얻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서어나무가 겨우살이의 주인이다. 겨우살이와 같은 식물은 다른 식물에 붙어산다하여 기생식물이라 하며, 숙주식물의 줄기나 잎 또는 뿌리에 붙어 있다. 숙주가 죽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한라산 숲에서 서식하는 으름난초, 수정난풀 그리고 버섯들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겨우살이와 달리 광합성도 하지 못한다.

동물의 세계도 혼자서 못사는 경우가 있다. 간혹 물가에서 만나는 연가시가 그렇다. 아직까지 연가시의 생활사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살아있는 사마귀 몸속에서 성장하다가 사마귀가 생을 마감할 즈음에 사마귀 몸 밖으로 나온다. 겨우살이보다도 무섭다. 겨우살이 때문에 서어나무가 죽지 않는다. 반면, 연가시는 사마귀의 영양분을 빼앗기 때문에 사마귀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하늘을 나는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는 소나무재선충이 더 무서운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에 찾아오는 여름철새인 두견이와 뻐꾸기도 건강한 숙주를 만나야 한다. 새들은 보통 스스로 둥지를 틀고 자기 알을 낳아 기른다. 예외도 있다. 그게 바로 탁란성(托卵性) 조류이다. 두견이는 자기 알을 숙주 둥지에 낳고 숙주는 그 알을 품어준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숙주 덕에 부화한 두견새는 숙주의 알을 등으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숙주의 알보다 일찍 부화한 두견이는 숙주로부터 먹이를 독차지한다. 근데 숙주는 용서한다. 이 두견새의 숙주는 누구일까. 바로 제주의 대표적인 텃새인 섬휘파람새이다. 텃새와 여름철새의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한 겨울이 오기 전에 두견이는 더 따뜻한 곳으로 떠나지만, 정작 두견이를 키운 섬휘파람새는 자기 고향이면서 두견이의 고향인 제주를 버리지 않는다. 그 두견이가 다른 벗들과 함께 이듬해에 다시 찾아와도, 자신들의 본능을 잃지 않는다.

제주도의 현실은 어떤가. 관광객 1360만 시대를 맞았다. 제주의 경제를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겨우 살아갈 정도로 애가 탄다. 제주의 땅은 누가 주인일까. 요즘 시대에 땅주인이 따로 있나 싶을 정도이다. 어떤 곳에는 곶감 빼먹 듯 주인행세가 심하다. 이러다가 번지 없는 청정 하늘도 빼앗길까봐 걱정이다. 마냥 배려하고 용서하고 포용해야만 착한 숙주일까. 하늘을 바라보는 서어나무와 봄 하늘을 기다리는 섬휘파람새의 심정은 어떨까. 자연의 순리를 거역할 수는 없지만, 제주도민들의 본때마저 나약하지 않길 기대해본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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