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11)제2부 한라산의 인문학 ④원로 산악인들의 산 이야기

[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11)제2부 한라산의 인문학 ④원로 산악인들의 산 이야기
"왜 산에 오르는가"… 도전 정신·한계 극복·탐험 경험 회고
  • 입력 : 2016. 08.22(월)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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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열린 한라산국립공원 초청 원로 산악인 특강 참석자들이 김영도·안흥찬 선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경민기자

"왜 산에 오르는가." 국내 대표적 원로 산악인들의 회고를 통해 산악사와 산악인으로 삶을 살아온 경험을 들려주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세계자연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은 21일 오후 2시부터 관음사지구지소 산악박물관에서 원로산악인 김영도(92) 선생과 안흥찬(86) 선생을 초청, 특강을 마련했다.

김영도 선생은 1977년 고(故) 고상돈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했을 당시 77 에베레스트 원정 대장으로, 1978년에는 한국 북극탐험대 대장으로도 활동했다. (사)대한산악연맹 회장을 지냈고, 한국등산연구소를 개설하는 등 우리나라 산악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한, 현존하는 산악계 최고 원로로 꼽히는 인물이다. '나의 에베레스트' 등 많은 산서를 집필했다. 제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제주 산악계 산증인이자 산악인 1세대 안흥찬 선생(본보 4월 21일자 7면, 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은 1961년 제주 적십자 산악안전대를 창립했으며, 1964년 탄생한 제주산악회의 창립 주역이기도 했다.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 산악인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2008년 자신이 그려온 그림과 오래된 소품들을 모아 그의 호 '소산(素山)'을 딴 작은 산악 박물관을 열기도 했다. 그의 족적은 또다른 한라산의 역사로 기록된다.

특강에서 김영도 선생은 산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안흥찬 선생은 1950년대부터 제주도 산악계를 이끌어 오는 동안 한라산에 대한 사랑과 잊혀져가는 산악사를 되돌아보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원로산악인들의 회고담은 이들의 도전정신과 인간의 한계 극복, 그리고 생생한 탐험경험 등 인문학적 사색의 시간도 선사했다. 강시영 선임기자



"조난사한 현장 보며 구조대 결심"

등반로 개설·철쭉제 기획 맡아

"백두-한라 합수 못이뤄 아쉬워"


▶안흥찬 선생의 산악구조대 이야기=한라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매료돼 산을 오르기 시작한 원로산악인 안흥찬 선생은 주로 한라산에서 활동을 하며 제주적십자 산악안전대 창립을 시작으로 제주산악 발전을 이끌었다.

이날 안 선생은 1960~1970년대 당시 동료들과 함께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구조활동과 등반로 개설 등 산악활동에 대한 회고를 들려줬다.

안 선생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중학교 2학년 시절 한라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부대에 보급을 위해 처음 한라산을 올랐다. 이후 4·3사건으로 인해 금족령이 내려지면서 한라산 입산이 금지됐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안 선생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의 휴전으로 1957년 10월 20일 4년 4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친 안 선생은 김종철 선생과 함께 매일같이 한라산을 올랐다. 갖춘 장비라고는 군제대를 하며 가지고 온 군화나 반합, 판초우의뿐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며 나날을 보냈던 안 선생은 1961년 서울대학생 이경재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자 산악구조에 뜻을 두게됐다. 안 선생은 "이경재군의 동료가 집으로 찾아와 조난신고를 했고 이들을 찾으러 한라산으로 향했다"면서 "현장에 도착해보니 추위에 떨고있는 동료를 위해 눈을 파고 그 위에서 체온으로 지키다 숨졌다"며 이들의 동료애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 안 선생은 김종철, 고영일, 부종휴, 현임종, 김형희, 김규영, 강태석, 김현우 등과 산악조난 예방과 인명구조를 위한 제주적십자 산악안전대를 창립한다. 산악안전대 창립 이후 한라산내 조난으로 인한 인명사고는 크게 줄었다. 이들은 안전한 등반을 위해 등산로 곳곳에 조난사고 방지를 위해 표시기를 달았고 위험한 곳에는 계단과 안전줄을 설치했다. 이들이 총력을 쏟아서 만든 등반로는 오늘날까지 이른 한라산 등산로이다.

안 선생은 1964년 제주산악회의 창립멤버로 참여하며 제주 산악발전에 큰 힘을 보탰다. 안 선생은 1967년 한라산 백록담에서 철쭉을 소재로한 '철쭉제'와 눈이 내린 한라산의 무운을 빌기 위해 '만설제'를 기획해 한라산이 국내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안 선생은 "1968년 국토삼천리 행사에 참가했는데 당시 마라도의 흙과 한라산의 물을 전라남도산악연맹에 인계했다"며 "통일이 되는 날 이 흙과 물을 백두산의 흙과 물과 합치려 했는데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안 선생은 한라산의 모습을 화폭으로 옮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들은 한국서화작가협회전 한국화부문에서 최우수상 등 크고 작은 수상을 받은 것들이다. 안선생은 2008년 한라산을 오르며 틈틈히 그린 그림과 오래된 소품들을 모아 소산(素山) 산악박물관을 열었다. 50여년간 안씨의 발자취를 정성스럽게 모아둔 공간이다.

안 선생은 "더 이상 산을 오르지 못할 때에 이 그림을 보면서 한라산을 추억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그림을 통해 산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태기자 ktk2807@ihalla.com



"제주인 정체성 한라산 지켜달라"

77에베레스트 원정대장 지내

"등산은 스포츠 아닌 삶의 방식"


▶김영도 선생의 사람과 산 이야기=1977년 고(故) 고상돈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했을 당시 77원정대 대장을 맡았던 김영도 선생.

안흥찬 선생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선생은 사람과 산 그리고 제주 산악인들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또한 등산이 갖는 의미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김 선생은 "등산은 레져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며 "제주인의 정체성인 한라산을 소중히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김 선생은 "산과 사람은 따로 떼어내 얘기할 수 없다"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천연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죽어서도 남아있을 천연자연과 과학기술의 문명 사이에 샌드위치 상태로 놓여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등산은 인간이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라며 등산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그는 "바다에서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제주의 자연조건은 전 세계에서도 볼 수 없다"며 "한라산은 제주도의 아이덴티티(주체성)"라고 강조했다. 제주도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곧 제주도라는 제주인의 정서와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그는 "한라산이 있어서 제주도가 제주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서 "오늘날 한라산이 온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어 제주도가 비로소 제주답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 1500m 이상의 산이 442개 이상 있지만 한국에는 1500m 이상의 산이 한라산과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등 9곳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선생은 이어 "한라산을 해발 1950m밖에 되지 않는 산이라 평할 수 있다. 그러나 3년 연속으로 한라산을 찾았을 때, 눈보라 때문에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면서 "한라산은 작은 산이 아닌 위대한 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으로부터 산악장비의 이름이 전해지면서 잘못 전달된 용어들이 있다"면서 코펠을 예로 들기도 했다.

또 김 선생은 "제주에는 이 자리를 함께한 양하선 선생(제주산악회 4대 회장, 제주산악연맹 5대 회장)을 비롯한 많은 산악계 선배가 있다"면서 "나이는 적을지 몰라도 안흥찬 선생이 나보다 산악계 선배다. 저는 한라산을 모르는데 안 선생은 한라산을 지켜온 분이자 산악운동을 먼저 시작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 선생은 고상돈 기념사업회를 통해 안흥찬 선생과 맺은 인연도 소개했다.

이어 "안 선생의 집에서 적설기에 한라산을 찾은 산악인들이 에드워드 윔퍼 천막을 치고 등반하는 모습이 기억난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산을 어떻게 지켜왔는지 궁금하다"면서 제주의 산악인들의 모습을 회고했다.

이날 김영도 선생은 구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인 특강으로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선사했다. 특강에 자신의 저서를 가져온 도내 산악인들에게 사인해주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줬다. 채해원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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