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주인의건강보고서 Ⅶ]건강캘린더(2)버거병과 감염

[제주, 제주인의건강보고서 Ⅶ]건강캘린더(2)버거병과 감염
흡연 원인 예의주시 속 '감염병' 정의 전망
  • 입력 : 2017. 01.13(금) 00:00
  •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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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 염증으로 손·발가락까지 절단돼
흡연이 버거병 유발·악화시킨다 '상식'


대부분 만성 질환은 완치는 포기하고 조절을 중요시하는데, 그 중에는 사지 말단이 괴사(세포나 조직의 일부가 죽음)되거나 심할 경우 절단까지 초래할 수 있는 혈관 질환인 '버거병'이 있다. 제주대학교병원 감염내과 감염관리실 정문현 교수의 도움으로 버거병과 감염에 대해 알아본다.

버거병으로 인해 조직이 괴사된 발가락.

1908년 버거라는 외과의사 겸 병리학자가 새로운 병을 정립했고, 그 병에 버거병(Buerger disease)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병리학 병명은 폐쇄(성)혈전혈관염이다. 혈관에 염증이 생기고(혈관염) 여기에 피떡(혈전)이 더해져 혈관을 더 막게 되면(폐쇄) 사지로 가는 혈액 공급이 줄면서 증상이 나오고, 완전히 중단되면 조직이 죽게 된다. 초기에는 손발이 차고 추위에 노출되면 통증을 느끼다가 걷거나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이 근육을 사용하게 되면 혈류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아프고(파행증), 병이 진행돼 혈류가 더 줄게 되면 움직이지 않아도 통증이 오고, 궤양이 쉽게 생기고 한번 생기면 매우 느리게 회복된다. 피부는 붉은 색을 띠는 청색증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조직이 완전히 죽는 괴사까지 진행되면 검고 딱딱하게 변하고 결국 절단을 해야 했다.

버거병으로 인해 조직이 괴사된 발가락.

병의 원인은 지금도 정확히 모르지만 담배를 많이 피우는 30~40대 남자에서 주로 생기고 금연을 하면 호전되기 때문에 담배 성분 중의 어떤 물질이 병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이런 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이나 자가면역 반응이 관여할 것이라 생각했다.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국가들도 대부분 흡연율이 높은 아시아 지역이고, 선진국에서는 금연 정책이 실시되면서 과거보다 확연히 줄어든 상태이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나 완치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금연을 하면 확실히 좋아졌다. 더불어 모든 증상이 좁아진 혈관에 의한 것이므로 혈관확장제로 혈관을 넓히고,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항응고제를 사용하거나 아주 좁아진 부위는 수술이나 시술로 치료를 해왔다.



흡연이 버거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킬 것이라는 것이 모든 의료인이 갖고 있는 상식인데, 이런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들이 간혹 있다.

버거병 환자에서 분리한 균을 단클론항체를 이용해서 간접형광항체법으로 염색한 균.

어린이에서 버거병이 발생한 경우도 있는데 이는 흡연으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간접흡연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간접흡연과 버거병은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흡연자는 많은데 이들 중 아주 일부에서만 버거병이 생기는 것도 설명하기 어려웠고, 여성 흡연이 많아지면서 이들에서 버거병이 많아지기는 하지만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믄 것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흡연 이외의 원인을 찾던 중 버거병이 감염질환임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나왔다. 1960년대에 환자에서 균을 발견했다는 논문이 간헐적으로 있고, 항생제로 좋아졌다는 논문 역시 있었다. 다만 보고된 환자가 1~2예에 불과해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감염이 되면 나타나는 항체 검사 연구도 간혹 있었는데, 연구자마다 결과가 조금 달라서 이 결과 역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혈관조영술에서 혈관이 막힌 사진.

감염병이 원인이라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원인 감염병은 대개 급성 질환인데 이런 균이 만성 염증성 질환을 일으킨다고 하니,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대부분 이들 감염병은 항생제로 완치가 된다고 알려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거병이 발생한다는 것 역시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2010년대에 들어 이 균들이 만성 감염을 일으킨다는 것과 항생제 치료는 일시적인 효과만을 나타내는 것이 다시 확인되면서, 버거병에 대해 알려진 모든 사항이 감염병으로 설명이 가능해졌다. 이와 함께 이 발견을 바꿔 적용하면 감염 발생 빈도로 버거병의 발생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제주에는 한국의 다른 지역보다 이런 균들의 감염이 많다는 조사가 있으므로 버거병 역시 더 흔할 가능성이 있다.



원인이 감염병이라면 과거보다는 버거병 치료가 쉬워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치료법에 더해 감염병에 사용하는 항생물질들을 사용한다면 버거병 치료 효과를 높일 것으로 예상됐다. 문제는 환자 수가 줄면서 사회적 관심이 줄고 이에 비례해 연구비도 줄면서, 이 분야 연구자가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이다. 최적의 치료제를 찾으려면 먼저 실험실에서 확인을 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인데 이런 실험도 할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계속된다면, 조기 진단이나 예방도 가능할 것이고, 수십 년 후에는 완치도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아직은 많은 부분이 추정에 불과하지만 금연과 기존의 치료법으로도 일상생활이 불편하다면 위와 같은 가능성도 한번은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감염과 염증의 개념이 추가돼 치료한다면 진행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 흡연은 혈관을 수축시키기에 혈관이 좁아지는 대부분의 질환을 악화시키는데, 금연을 하면 이런 혈관 수축이 없어지므로 증상은 좋아진다. 하지만 증상에 관계없이 감염과 염증은 계속 진행되는 것이기에 시간이 흘러 10년이나 20년 뒤에는 다른 부위들이 좁아지게 되고 이에 대해 시술이나 수술을 다시 받아야 한다. 따라서 만일 염증을 줄이는 약제가 이런 진행을 조금이라도 늦춰준다면 혈관이 막히는 정도도 줄일 것이고, 그 결과로 증상도 덜하고 시술이나 수술을 받는 횟수도 줄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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