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농업기술 확산을 막는 잘못된 제도

[월요논단]농업기술 확산을 막는 잘못된 제도
  • 입력 : 2017. 02.13(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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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농업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 작년 7월에 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 행동강령' 때문이다. 농업 연구사, 지도사가 월 3회 또는 6시간을 초과해서 농업인 교육을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농업은 기술 확산을 통해 좋은 품질을 생산하는 것이 우선인데, 필요한 기술들을 확산시킬 수 있는 길목을 막아 놨으니 제주농업이 갈 길이 어둡다.

이 행동강령은 제주 농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기술 확산 욕심에 농업인 교육을 너무 열심히 했다가는 행동강령을 위반한 벌로 감사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작년 7월부터 행정의 주도로 제주농업의 기술 확산은 잘못된 길을 가기 시작했다.

육지부 다른 지역은 교육을 통한 농업기술 확산에 온 힘을 기울인다. 기술을 끌어올려 품질을 높이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농한기가 되면 많은 지자체와 농협은 ○○아카데미,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농업기술 확산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연구사, 지도사의 외부강의 횟수를 제한하는 제주는 교육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어렵다. 제주는 감귤이 주작물이어서 도외 강사를 초청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른 지자체는 교육을 많이 하는 농업지도사에게는 상도 우선 준다. 문경시 농업기술센터의 6척 거구인 김경호 계장은 밤늦게까지 농업인 교육을 담당한다. 지각하거나 쉬는 시간을 어기면 문을 닫아 교육받지 못하게 할 정도로 엄격한 지도사다. 그 공로로 문경시에서 추천하여 작년 '농업인의 날'에는 국무총리 상을 받았다. 지도관 승진도 1순위이다.

복숭아와 반시의 고장인 청도군은 품목별로 연중 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한다. 기술 좋은 복숭아 농가는 평당 소득이 5만원 넘는다. 7~8년 잘 키운 복숭아 한 그루에서는 150만~200만 원의 소득을 얻는다. 이런 높은 소득은 모두 질 높은 기술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창군은 분야별로 1박 2일의 집중강의로 농업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전국의 유명강사를 초청하여 재배, 토양·비료, 병해충, 농업경영 등에 대해 각각 16시간씩 강의를 받게 한다. 농번기에는 야간에 교육을 진행한다. 그러니 웬만한 농가는 강사보다 기술이 뛰어나다. 2~3시간 단발식으로 이루어지는 제주의 농업교육과는 차원이 다르다. 맨 앞자리부터 채워지는 농업인의 열기 때문에 강사도 단단히 준비하고 강의하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 행동강령'을 만든 것은 이해는 한다. 과거에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뇌물성 강사료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에는 그런 농업직 공무원은 한 사람도 없다. 사업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이권과 관련된 교육이라면 이 행동강령이 맞다. 그러나 농업교육은 농업인 모두가 알아야 할 기술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 행동강령 때문에 필요한 교육도 눈치를 봐야 하고 농협도 조합원 교육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결국 제주의 농업기술은 과거에 머물고 경쟁력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농업 연구사와 지도사의 고유 업무는 기술을 개발하고 지도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책상 위에서 문서와 서류로 농업기술을 확산시킬 수는 없다.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 행동강령'은 농업연구사, 지도사의 기술교육 강의 횟수 제한을 없애야 한다. 오히려 기술교육을 많이 하는 연구사, 지도사에게는 상을 주고 권장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입으로는 농업인들 앞에서 기술 확산을 통해 농업경쟁력을 높이겠다고 큰소리치고, 행동강령으로는 벌을 주는 앞뒤가 모순된 제주특별자치도가 되어서는 농업에 희망이 없다. <현해남 제주대학교 생명자원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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