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떠나는 바람까마귀를 생각하며

[목요담론]떠나는 바람까마귀를 생각하며
  • 입력 : 2017. 03.02(목)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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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나 중산간 도로를 따라 탐조하다 보면, 일부 마을 입구나 외곽에 돌로 쌓아올린 방사탑(防邪塔)을 접하게 된다. 뭘까. 제주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문화자원이지만, 외지인이나 젊은 세대들에겐 낯설 듯 싶다. 제주도에는 돌하르방, 성담, 연대, 잣성, 올레담, 밭담, 산담, 원담, 맷돌, 동자석 등 다양한 돌문화가 발달해 있는데, 방사탑도 그 중 하나이다.

방사탑은 마을에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육지부의 마을수호신으로 알려진 솟대와 장승처럼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탑을 세우기 전에 돌무더기 안에 무쇠 솥과 밥주걱을 넣고, 마지막으로 돌탑 꼭대기에는 새 모양의 머릿돌을 얹어 놓는다. 무쇠 솥은 어떠한 불에도 타지 않을 정도로 아무리 큰 화재가 나더라도 마을을 지킨다는 의미이고, 밥주걱은 재물을 긁어 모아 마을의 번영을 누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 머릿돌은 어떤 의미일까. 대체로 돌의 모양은 새의 머리이다. 육지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솟대를 생각하면, 의외로 이해하기 쉽다. 새는 하늘의 신과 땅에 사는 인간을 연결해주는 신성한 매개체이다. 솟대는 대개 오리나 기러기 모양이지만, 방사탑의 머릿돌은 까마귀 형상이 많다. 오리나 기러기는 대부분 겨울철새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땅에서도 물에서도 하늘에서도 그 어떤 영역도 넘나들 정도여서,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왔다. 농사에 있어서 가뭄, 홍수, 태풍, 폭설 등을 관장하는 하늘을 잘 모시기 위해서라도, 이승의 부정한 면을 저승에는 전달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새들은 인간사를 다 들여다보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신에게 일러바칠 것이다.

제주의 방사탑에 앉은 까마귀도 마찬가지다. 제주 사람들의 집 마당은 물론 마을의 정자에서 벌어지는 모든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제삿날도 기억할 정도이다. 오죽하면 까마귀도 모르게 제사를 했을까.'까마귀 모른 식게'가 그것이다. 아들이 없어서 부모님의 제사를 시집간 딸이 대신하거나 결혼하기 전에 죽은 자식의 제사를 해야 할 때, 이 속담이 생겨났다. 제삿날에 제사음식으로 가득해야 하지만, 다른 제사와 달리 형편상 식구들끼리 조용히 치르고 음식도 적게 장만하는 관습이다. 근데 까마귀가 제삿집을 알아내어 동네방네 다 소문내버리면, 큰일이다. 이웃집의 제삿날도 돌아보는 게 제주 사람들의 정인데, 막상 찾아오게 되면 대접할 음식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까마귀를 미워할 수 없고 참 난감할 수밖에 없다.

보통 까마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영험한 사자로 인식되면서, 제주 사람들은 마을의 안녕과 부를 위해 까마귀로 하여금 저승에 잘 전달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요즘 교래리 사거리나 남조순오름 일대에서 수백 수천 마리씩 무리를 이룬 떼까마귀(바람까마귀)가 큰 바람(제주어로는 '바람' 또는 '바름'이라 한다)을 일으키듯 비행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마을의 혼마저 삼켜 버릴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밀려온다.

이제 3월이다. 겨울철새인 떼까마귀가 떠난다. 땅에서 날아오른 그들이 곧바로 신에게 가기 전에 방사탑 꼭대기에서 한 번 더 숙고할 것이다. 제주 사람들이 진정 바라는 것을 알아차렸을까. 부디 제주 사회의 사악한 모습은 못 본 척 해주길 기원해 볼까. 아니다. 차라리 사악한 것들을 모조리 신에게 낱낱이 고해주길 빈다. 바람까마귀가 다시 찾아올 쯤엔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김완병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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