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9)국내 첫 시립미술관 기당미술관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9)국내 첫 시립미술관 기당미술관
"감귤·관광산업 만큼 번듯한 문화시설 세우자"
  • 입력 : 2017. 08.15(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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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당미술관에서 개관 30주년 아카이브전이 열리고 있다. 진선희기자

서귀포시문예회관 후원회 삼매봉도서관 이어 미술관 추진
시민 성금으로 부지 마련하고 재일 사업가 강구범 3억 더해
30년전 제주시 보다 앞선 인프라 비해 속도 더뎠던 문화행정

"귀 후원회에서는 평소 시정에 적극 참여하여 왔을뿐만 아니라 특히 시민 문화예술의 향상과 후세 미술 교육의 영원한 요람이 될 서귀포시 기당미술관 건립에 따른 기반 구축에 기여한 공이 지대하므로 이 패를 드립니다."

1987년 7월 1일 서귀포시 서홍동 삼매봉기슭에 문을 연 기당미술관. 이날 개관식에서 공간이 탄생하기까지 애를 쓴 인사들을 격려하는 자리가 이어졌고 현치방 서귀포시장은 '서귀포시문예회관 후원회'에 이런 내용이 적힌 감사패를 전달했다.

기당미술관 30주년 아카이브전에 나온 기당미술관 개관식 장면.

▶서귀포시민 십시일반 3100만원 모아='전국 첫 시립미술관'인 기당미술관은 자신의 사재를 내놔 미술관 설립을 이끈 서귀포시 법환동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 강구범(1909~1994) 선생의 호를 딴 공간이다. 미술관 입구에 놓인 기당 선생의 흉상만으로 그의 공적을 짐작할 수 있다.

기당은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인물이다. 1933년 일본 교토에서 신천호모공업소를 운영하는 등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를 잡는다. 기당은 1986년 기당법환복지회, 1988년 제주대 해양과학연구소 부지와 건물을 기증하며 고향 발전에 큰 힘을 보탰다.

국내 첫 시립미술관으로 세워진 기당미술관 전경. 진선희기자

기당미술관 역시 그의 기여도가 막중하지만 서귀포시민들의 역할도 기억해야 한다. 서귀포시에 문화시설이 없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 인사들이 1984년 12월 구성한 서귀포시문예회관건립추진위원회가 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48명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했고 서귀읍장을 지낸 오광협 전 서귀포시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이들은 지역주민과 재일교포 기금 5300만원으로 서홍동 일대 9필지 1만1525㎡를 사들인다. 1986년 7월 1일 서귀포문예회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한 삼매봉도서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서귀포시민들의 성금과 기당 선생의 건축비 지원으로 첫 삽을 뜬 기당미술관 공사 현장. 사진=삼매봉도서관 제공

도서관이 문을 연 뒤 서귀포시문예회관 후원회로 명칭을 바꿔 단 추진위원회는 1차 도서관 시설에 이어 미술관 건립에 나선다. 그 결과 서귀포 시민들의 성금 3100여만원으로 4973㎡의 부지를 마련한다. 기당 선생은 3억2000만원의 공사비를 지원했다. 마침내 1986년 11월 기당미술관 기공식이 열렸고 이듬해 7월 1일 처음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전문 인력 없어 등록미술관 신청서 퇴짜=도청 소재지였던 제주시 지역보다 앞선 서귀포시 공립 문화시설의 등장은 '지역문화창달의 좋은 본보기'로 이목을 끌었다. 감귤·관광 산업이 발전하고 소득이 높아진 반면 인문적 자산은 뒤떨어졌는데 도서관·미술관을 통해 '문화예술의 공공적 광장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귀포시민들의 자발적 의지로 문화공간을 세웠지만 문화행정은 그 열의를 따라가지 못했다. 1년 차이를 두고 같은 날짜에 개관한 삼매봉도서관과 기당미술관은 공간 성격이 크게 달랐지만 종합문예회관이나 종합문예회관사업소로 한데 묶여 운영되다 2004년 1월 분리된다. 삼매봉도서관이란 명칭도 그 후에 붙여졌다.

눌(낟가리) 모양으로 설계된 기당미술관 조감도.

서귀포시는 1992년 제주도를 경유해 문화부에 기당미술관에 대한 미술관 등록 신청서를 내지만 반려된다. 종합문예진흥사업소에 소속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한 명칭이 부적절하고 전문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점이 그 이유였다. 10주년이 되는 1997년에야 미술 전공자를 채용하고 기당미술관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해 등록미술관으로 거듭난다. 지금 기당미술관은 700점 가까운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김홍식 건축가가 설계한 기당미술관은 추수한 곡식을 쌓아두는 낟가리를 뜻하는 제주방언인 '눌'모양으로 지어졌다. 미술관측은 "미술작품의 보고라는 미술관의 기능과 눌의 개념은 통한다"고 했다.

현재 기당미술관에서는 30주년 아카이브전이 열리고 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뒀던 빛바랜 자료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기당 관련 자료를 시작으로 30년전에 진행된 개관 기념전 작품을 재구성해 걸어놨고 전시 포스터, 도록, 방명록 등을 펼쳐놓았다. 초대 명예관장으로 기당미술관을 상징하는 또다른 인물이었던 '폭풍의 화가' 변시지 선생의 유품 등으로 재현한 명예관장실도 추억을 깨운다.

서귀포시는 미술관의 도시…공립미술관 4곳 산남 분포
인물 이름 딴 시설 공통점…명예관장제 시행도 닮아


'전국 첫 시립미술관' 위상을 지닌 기당미술관이 있는 서귀포시는 미술관의 도시다. 서귀포시에만 4개의 공립미술관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립미술관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적용받는 미술관은 제주도립미술관, 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소암기념관, 제주추사관,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등 7곳이다. 이중 제주추사관, 기당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소암기념관 등 절반이 넘는 4곳이 '산남'에 자리했다.

서귀포시 지역 공립미술관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인물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다.

기당미술관 입구에 놓인 기당 선생 흉상. 진선희기자

제주추사관은 제주에 유배됐던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예총제주도지부(제주예총)가 1982년 유허비만 있던 대정 추사유배지 조성을 위한 기금마련전을 열며 제주추사관의 전신을 만든다. 김기창 서세옥 김충현 김응현 민경갑 현중화 변시지 등 도내외 작가들이 동참한 기금전을 통해 2860만원이 모아졌고 이를 종잣돈으로 지자체 지원을 더해 1984년 유배지 초가를 복원한다.

이중섭미술관은 서귀포에서 피란시절을 보낸 이중섭 화가가 모티브가 됐다. 1995년 11월 이중섭거주지 기념표석이 설치됐고 이듬해엔 이중섭거리를 지정했다. 2002년 11월 이중섭전시관이 생겼고 가나아트, 갤러리현대 등의 미술품 기증이 잇따르며 2003년 2종 미술관, 2004년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된다.

소암기념관은 서귀포 출신으로 '20세기 한국 서예의 거장'으로 불리는 소암 현중화 선생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기 위한 공간이다. 소암 선생 창작실인 '조범산방'을 품고 2008년 10월 문을 열었다.

이들 미술관은 한결같이 명예관장제를 시행하고 있다. 서귀포시는 변시지 선생 별세 이후 공석이던 명예관장에 지난 2월 서귀포 출신 고영우 작가를 위촉했다. 제주추사관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이중섭미술관의 명예관장은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다. 소암기념관은 소암의 유족인 현영모씨가 명예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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