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 (10) 제주미술 토양 일군 세종미술관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 (10) 제주미술 토양 일군 세종미술관
폐관 위기 딛고 14년간 오롯이 '제주미술사랑'
  • 입력 : 2017. 08.29(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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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원 지하에 전시실 2개 등 갖추고 1988년부터 2002년까지

미술인 성원받으며 운영난 넘긴 뒤 심기일전 세종갤러리 개칭

탐미협 창립전·강요배 역사화전 등 제주미술사에 굵직한 전시



세종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세종의원 건물에 걸려있다. 사진=김순택 원장 제공

제주시 이도1동 1704-12번지 세종의원 지하1층. 색바랜 홍보전단의 맨 앞장에 주소가 또렷했다. 제1전시실 32.6평, 제2전시실 33.7평, 사무실 6.8평, 접견실 9.4평, 작품보관실 9.3평. 시설 규모가 상세히 소개됐다.

"세종미술관은 그간 전문 전시공간의 부족으로 겪고 계신 이 고장 미술인들의 불편을 다소라도 덜어드리고자 합니다. 아울러 문화인이 교류할 수 있는 장소로서 나아가 우리 고장 미술 문화 중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다방 전시의 실질적 마감 이끌어=미술관이란 이름을 단 공간들이 들고나면서 다방 전시를 좀체 끝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1987년 서귀포시에 기당미술관이 들어섰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창작 결과물을 내보일 전시공간 마련은 제주지역 문화 동네에서 여전한 숙제였다. 1988년 8월 6일 개관기념 초대전을 치른 세종미술관은 그런 고민을 해결해줬다. '제주미술사랑'이란 단어를 맨 앞에 자기소개하듯 붙였던 세종미술관은 36명의 작가를 초청해 개관전을 열고 제주에서 본격적인 미술관 시대가 시작된 걸 알렸다.

소유주는 세종의원 김순택 원장이었다. 개관전 도록에 "누구에게나 미술작품 감상이 그저 소박한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적었던 그의 말은 세종미술관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개관 초기 김 원장은 진료를 보다가 흰 가운을 입은 채 지하 미술관으로 내려가 대관 업무를 처리하는 등 직접 공간 운영에 나섰다.

세종갤러리의 14년 회고전 개막 행사를 찾은 미술인 등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가 곽상필씨가 찍었다. 사진=양미경씨 제공

세종미술관은 쉬는 날이 거의 없이 연중 전시를 이어간다. "처음 생겨났을 때 마치 새 세상을 열어준 것 같은 환영을 받았다"는 김순택 원장의 말처럼 세종미술관으로 전시가 몰렸다.

하지만 다른 공간들이 그랬듯 운영의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1993년 위기가 닥친다. 연말로 폐관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이 그 해 9월 지역 신문 등을 통해 전해지자 미술계에선 세종미술관 살리기 운동이 벌어진다.

이 무렵 세종미술관은 재도약을 위한 심기일전으로 세종갤러리로 명칭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한다. 세종갤러리 시기엔 제주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전시가 적지 않았다. 금기의 족쇄가 채 풀리지 않았던 때 제주4·3과 미술의 만남이 적극적으로 펼쳐진 곳도 세종갤러리다.

1988년 8월 세종미술관 개관전 도록 표지.

▶제주4·3과 미술의 만남 장소로=1994년 1월 탐라미술인협회가 세종갤러리에서 창립전을 가졌고 같은 해 4월엔 제1회 4·3미술제 '닫힌 가슴을 열며'전을 선보인다. 강요배 작가는 1992년 4월 '제주민중항쟁사'란 제목의 역사그림전에 이어 1998년 4월 '동백꽃지다'전으로 제주4·3의 아픔과 진실을 드러낸다. 4·3당시 미군에 의해 촬영된 포로수용소 사진이 최초로 소개된 공간도 세종갤러리(1998년 4월 4·3역사사진전 '긴 어둠속을 지나')였다. 제주판화가협회, 제주도옹기연구회 창립전도 이루어졌다.

한해 평균 30여회 전시가 있던 세종갤러리에서 청춘을 건넌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양미경씨에겐 각별하다. 그는 김순택·김순관·박난숙 관장에 이어 세종갤러리가 문을 닫을 때까지 관장을 지냈다. 그의 나이 서른셋부터 시작해 5년간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뒤 1992년 7월 그곳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연 그는 "제주시 한복판에 자리한 세종미술관은 화가 지망생들에겐 커다란 꿈의 장소"였다고 말했다.

세종미술관(세종갤러리)을 거쳐간 전시 포스터.

양미경 전 관장은 세종갤러리를 미술인들의 사랑방으로 기억한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놓고 시간을 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는 주재환 특별전, 청년작가전인 '하늘의 별따기'전, 테라코타전 등을 기획하며 지역 미술의 토양을 다지는 역할을 맡았다.

"물마루를 건너온 이방인에게 제주의 인문과 예술을 배우고 체험하는 친교와 학습의 공간"(평론가 김현돈)이면서 "예술에 대한 순수한 애정, 자생성, 사설공간의 자유로움, 사랑, 우정과 같은 피어오르는 삶의 향기가 넘치는 마당"(화가 강요배)이었던 세종갤러리는 2002년 작별을 고한다. 운영난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해 12월 26~31일 지난 14년의 흔적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진행된 게 마지막이었다.

김순택 원장은 당시 회고전에 부친 글에서 "갤러리의 문을 닫으면서 성을 처음 쌓기보다는 지키기가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경영자적 자질과 시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큐레이터가 운영하는 전시장의 실현을 위해 누군가 이 바통을 받아주기 바란다는 말과 함께.



경영난 앞에 무너졌던 사설미술관의 수난사

국공립 시설과 달리 사설공간은 10년을 버티기 어렵다. 문화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지금처럼 제주도가 운영하는 공립미술관이 7개나 생기기 전엔 사설 미술관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창작을 하던 작가 등이 관장을 맡던 동인미술관, 세종미술관, 신천지미술관 등이 한 시절을 빛나게 했다.

화가·조각가 등으로 활동했던 한명섭 작가(작고)는 1983년 11월 제주시 관덕정 인근에 동인미술관을 개관했다. 제주작가 22인 초대전을 시작으로 세종미술관의 등장 이전까지 개인·단체전이 잇따랐다. 5년만에 문을 닫았지만 한명섭 작가는 2003년 제주시 삼양동에 동인갤러리란 이름으로 다시 미술공간을 꾸렸다.

제주시 애월읍엔 '제주조각공원 신천지미술관'이 있었다. 1987년 4월 문을 연 신천지미술관은 제주에 제대로 된 문화시설을 만들겠다며 대전 출신의 조각가 정관모씨가 조성한 공간이다. 1992년 11월 미술관으로 등록한 신천지미술관은 2만5000평의 부지에 조각품 350여점과 회화 100여점 등을 전시했다. 이름난 시인들의 시를 새긴 시비 50여점도 야외 전시해 화제를 모았다. 제주출신 화가 김택화씨가 초대 관장을 거쳤고 설립자인 정관모·김혜원 부부에 이어 제주 조각가 양용방씨가 마지막 관장을 지냈다.

신천지미술관은 1990년대 말부터 관람객이 줄기 시작하며 경영이 악화된다. 미술관측은 결국 2004년 6월 영업부진을 이유로 제주도에 폐관 신고서를 제출했다. 지금 미술관 자리엔 공룡 테마 시설이 들어섰다.

최근에는 제주에 정착한 작가들이 세운 개성있는 사설 미술관들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으로 알려진 이왈종 작가가 운영하는 서귀포 정방폭포 부근의 왈종미술관, 제주시 탑동과 동문로의 여관·극장 등 오래된 건물을 미술관으로 바꿔놓은 씨킴(김창일) 작가의 아라리오뮤지엄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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