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 (8) 무속신앙으로 이어진 '굿떡'

[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 (8) 무속신앙으로 이어진 '굿떡'
생사 넘나들던 제주여인들의 바람·정성 담긴 깊은 맛
  • 입력 : 2017. 11.20(월) 2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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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굿·영등굿 등 해녀 안전·풍어 등 기원
믿음 담은 '돌래떡' 음식궁합 정수 '빙떡'



제주해녀들은 바다에도 밭을 뒀다. 화산섬 거친 땅을 일구듯 바다밭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어야 했다. '칠성판(관 속 바닥에 까는 널조각)'을 등에 지고 물질을 한다는 제주해녀들에게 무속신앙은 절대적이었다. 언제 어떤 어려움에 처할지 모르는 그들이 살아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간절함을 청했던 곳은 '당'이었고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형상화되었던 것이 바로 '굿'이었다. 풍요로운 수확물로 가족의 삶을 책임지려 했던 마음도 한결 같았을 것이다.

이처럼 제주해녀의 삶과 뗄 수 없는 것은 바로 무속신앙과 관련된 음식이다.

물질조업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연 잠수굿.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을 꼽으라면 '떡'이다. 제주사람들에게 떡이 주는 의미는 '기원(祈願)'이다. 곡식이 넉넉지 못했음에도 떡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속신앙과 집안 대소사의 의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제주의 떡은 다양한 이름과 모양,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큰 마을행사 '잠수굿'=제주의 여성을 중심으로 이어온 제주의 굿은 이방인들의 시선으로 보면 그야말로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메밀과 무채를 사용해 만드는 빙떡. 사진=김희동천기자

오래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굿은 최근에는 보전해야할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잠수굿은 도내 해안마을에서 해녀들이 물질조업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면서 열리는 굿으로 '잠수굿', '잠녀굿', '해녀굿' 등으로 일컬어진다. 의례 중 '용왕(龍王)맞이'는 해산물의 풍요와 해녀들의 안전을 수호해 주는 용왕신을 맞아 요왕길을 닦는 차례다. 용왕신을 잘 대접한 후 재물을 실은 짚배를 바다로 띄우고 이어 용왕과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 종이에 싼 재물인 '지'를 바다에 던지며 정성을 다한다. 잠수굿이 언제부터 열렸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학자들은 영등굿의 본래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녀들이 많은 지역에서 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속 의례라고 보기엔 잠수굿은 가장 큰 마을 행사다.

찹쌀 기름이 들어간 지름떡

굿이 치러지는 동안 지역이나 해녀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다 찾아온다. 잠수굿이 중요한 이유는 해상의 무사고, 해산물의 풍요, 공동체의 연대 강화를 통해 잠수들의 정체성과 가치관, 세계관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거친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물질 작업을 해야 하는 해녀들에게 굿이 '정신적 의지처'였을 것이다.



▶특별한 제주의 '굿떡'=해녀들은 굿 하루 전날 방울떡, 방애떡, 사발시루떡, 돌래떡 등을 직접 빚는다. 제주의 굿떡을 가장 먼저 꼽으라면 시루떡(시리떡)일 것이다.

유교식 제례용 떡과는 달리 켜없는 떡인 백시리와 보시시리 쌀가루로 빚은 것이다. 그와 다른 떡으로는 백돌레, 메밀돌레, 월변, 방울떡 등이 있다. 제주떡의 이름은 마을마다 다르게 부르는 경우도 있다.

돌래떡(돌레·도래떡)은 쌀가루 또는 메밀가루로 만든 원판형 떡이다. 제주의 굿과 가장 밀접한 떡이기도 하다.

돌래떡

마을에서 공동으로 행하는 무속제와 개인이 당을 찾을때 신에게 대접하는 진설음식 중에서 가장 흔한 떡이 돌래떡이다. 정성을 상징하는 떡이라 지금도 굿을 하거나 본향당에 갈때 꼭 준비한다. 멥쌀로 만든 것을 흰돌래, 좁쌀로 만든 것을 조돌래, 보리로 한 것은 보리돌래라고 한다. 돌래떡보다 조금 적고 얇게 만든 떡을 월변이라고 한다.

해녀들은 굿을 하기 위해 몸을 정갈하는데 힘을 썼다. 제물을 준비하고 당에 갈 때는 앞만 보고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떡을 만드는 사람은 7일 전부터 육류나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지도, 만지지도 않았다. 떡을 만들 때 맛을 보지 않고 부부간의 잠자리도 하지 않았다.

보리쉰다리

굿을 할때 심방이 돌래떡을 차롱에 넣어 구경꾼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는 제주속담에서 떡은 돌래떡을 말한다. 보름달을 닮은 떡은 사람을 위한 떡이 아니라 신주를 위한 것이다.

해녀들은 간절한 믿음으로 굿을 하기 위해 떡을 지어 올렸고, 그떡을 그들의 공동체 공간이었던 불턱에서 구워서 나눠 먹으면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보릿가루에 술을 부어 반죽했던 상외떡(상웨떡)=상외떡은 보릿가루나 밀가루에 술을 부어 반죽한 뒤 시간이 지나 부풀어 오르면 반죽을 떼어 소를 넣고 둥글게 만들어 솥에서 찐다. 모양은 둥글게 만들기도 하고, 길게 모양을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보리빵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본래 이름은 '보리 상외떡'이다.

물질하고 있는 해녀 모습

상외떡이 그렇듯, 제주에서는 보리를 활용한 음식이 적지 않았다. 해녀들은 제주에서만 볼 수있는 독특한 발효식품인 '보리쉰다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는 생활의 지혜에서 얻어진 음식이다.

보리쉰다리는 쉰 보리밥을 버리지 않고 누룩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절약이 몸에 밴 제주사람들의 알뜰함과 지혜가 만들어낸 음료이다. 보리쉰다리는 하루나 이틀쯤 지난 보리밥이 부패하기 시작하면 밥에 손가락을 넣어서 쑥 들어갈 정도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면 보리밥에 물과 잘게 부순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다. 여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겨울에는 5, 6일 정도 발효시킨다. 밥이 발효되어 뭉글뭉글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것을 체로 걸러서 끓여 마신다. 설탕을 첨가하기도 하는데 설탕의 양에 따라 맛이 조절된다.

보리 상외떡

그외에도 제주에는 보리개떡, 새미떡, 만디, 감저시루떡, 메밀묵떡도 있다. 빙떡은 음식궁합의 정수를 보여주는 떡이다. 메밀의 담백한 맛과 속재료로 사용한 무채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는 빙떡은 제주사람에게는 추억의 음식이다. 신기한 것은 빙떡을 지질 때 감귤이 옆에 있거나 보관 중인 메밀가루 옆에 감귤을 놓아두면 빙떡이 잘 지져진다는 말이다. 무슨 이유였을까. 지금도 궁금해진다. '별떡'이라고 불리는 기름떡(지름떡)은 남녀노소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떡이었다. 귀한 찹쌀로 만든 떡에 귀한 기름까지 들어갔으니 얼마나 귀한 맛이었을지 상상이 된다.



▶제주의 떡이 궁금한 이방인들=독특한 제주의 떡은 이주민들에게는 '특별한 콘텐츠'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먹을거리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직접 떡을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구좌읍 하도리의 요리사무소

이처럼 제주의 떡을 직접 해녀들에게 배워볼 수 있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얼마전 구좌읍 하도리에 둥지를 튼 '요리사무소'는 제주이주 7년차 함주현·최정은 부부가 옛 하도리사무소를 개조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해녀들이 직접 떡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제주의 차례상에 올리는 송편과 '별떡'이라고 불리는 지름떡 만들기를 배우고 함께 먹는 시간이었다. 이날 제주떡 만들기를 알려준 이들은 하도리 박미정·김원자 해녀였다. 배우러 온 이주민들은 제주떡이 신기했고, 가르치는 해녀들은 제주떡에 대해 신기해하는 이주민들이 신기했다.

참가자들은 "'떡'은 누구에게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며 "둥근 제주의 떡 처럼 제주해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음식만들기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해녀들의 '기원'을 담은 특별한 떡을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취재=이현숙·손정경 기자, 사진=김희동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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