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 이방익 표류현장을 가다] (10·끝)복건성 탐방을 마치며

[제주사람 이방익 표류현장을 가다] (10·끝)복건성 탐방을 마치며
"단순 탐방 넘어 복건성 등과 실질적 문화교류 기대"
  • 입력 : 2018. 10.28(일) 19: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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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이굉 중국 복건성 외사판공실 부주임(왼쪽에서 두번째)과 이방익 표류 탐방 자문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자문단 대만·중국 복건성 일대 방문
표착 추정지 지베이섬 찾아… 하문 주자서원 확인

권무일 "복건성을 시작으로 '이방익 로드' 만들자"
심규호 "표류 기록 현재 갖는 의미 찾고 되살려야"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다. 제주 사람 이방익(李邦翼)의 표류 여정을 따라 대만 팽호도를 출발해 중국 복건성까지 다다랐던 여정이 그랬다. 이방익과 그 일행은 조선 정조 때인 1796년 9월 제주 바다에서 표류해 대만, 중국을 거쳐 약 9개월만에 생환했다. 그 길에 '평설 이방익 표류기'의 저자 권무일 작가, 제주국제대 심규호 석좌교수, 한라일보 취재팀이 있었다.

지난 4월 21일 이방익의 고향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이방익 표류기를 되짚으며 새로운 탐사를 떠나는 한라일보 취재팀과 자문위원들의 무탈을 기원하는 고사가 열렸다. 얼마 뒤 자문단과 취재팀은 대만으로 향했다. 4박 5일 짧은 일정상 이방익의 표착과 송환 여정을 순서대로 좇기 어려워 대남에서 시작해 팽호도에서 대만 탐사를 마무리지었다. 7월에는 8박 9일 동안 중국 복건성에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주제주중국총영사관(총영사 펑춘타이)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대만과 중국 복건성 답사는 이방익이 거쳐간 기나긴 여정의 절반도 안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지난 탐사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권무일 작가는 대만, 중국 복건성 방문이 끝난 뒤 현지에서 구해온 자료를 뒤져가며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그 내용을 꼼꼼하게 소개해왔다. 지난해 11월 홍콩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화문여행문학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이방익 표류 기록에 관한 소논문을 발표한 심규호 교수는 학회 등을 통해 답사 결과를 꾸준히 알려나갈 계획이다. 지난 26일 한라일보사에서 가졌던 결산 좌담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평설 이방익 표류기'의 저자 권무일 작가(사진 왼쪽)와 제주국제대 심규호 석좌교수.

▶팽호도는 대만의 대표적 관광지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낯설다. 이방익을 통해 새롭게 만났고 표착지로 추정되는 지베이섬도 방문했다.

권무일(이하 권)=마조신(해신)이 도운 듯 이방익 일행에겐 행운이 따랐다. 지베이섬 지형이 그들을 살렸다. 바다에 너럭바위 같은 곳이 있고 원담(석호)이 조성되어 있어서 해안가에 무사히 닿았고 어부들의 눈에 띌 수 있었다. 지베이섬을 돌다 제주에서 떠밀려왔을 업소용 사이다병을 봤을 땐 '바로 이거다' 싶었다. 해류의 영향으로 팽호도까지 표류해온 정황을 증거물처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심규호(이하 심)=팽호도 연표를 소개한 박물관 전시물에 이방익 표류 사실이 적혀 있었다. 어디서 인용한 기록인지 궁금했고 앞으로 이방익을 통해 제주와 팽호도의 인연을 넓혀갈 수 있는 지점이 되리라 본다. 밭담, 방사탑, 원담 등 제주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 유산들도 기억에 남는다.

▶이방익 일행이 지금의 복건성으로 이동하기 전 대남으로 간다. 그곳에서 새삼 대만의 지난한 역사와 마주했다.

권=이방익은 대남 지명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한글 표해록에 '화각'이라고 적었던 곳은 천후궁이고 '상산부'는 안평고보를 일컫는 말일 게다. 연암은 '서이방익사'에서 녹이문을 거쳤다거나 안평고보에 갔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 이방익은 녹이문을 지나 대남에 발디뎠고 안평고보에도 갔었다. 대남에서 그 현장을 직접 볼 기회를 가졌다.

심=이방익 관련 자료에 등장하는 녹이문이 과연 어디인지 알아내려 애썼다. 한때 대남의 관문으로 항구 역할을 했던 그곳은 지금 육지처럼 메워져 있었다.

▶대만 일정을 마치고 2개월여 뒤에 중국 복건성 답사를 이어갔다. 하문에서 어렵사리 주자서원을 '발견'했을 때의 감흥이 컸다.

권=산길을 오르며 이방익 한글 표해록 속 향불사라는 이름과 유사한 향산암으로 움직일 때만 해도 미심쩍었다. 그런데 산을 넘어 사당에 도착해보니 표해록의 문장과 딱 들어맞았다. 옛 모습이 간데 없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복건성 외사판공실 이굉 부주임이 그 격에 맞게 새롭게 정비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기대를 걸어본다.

심=산을 넘어 당도한 곳에 주자서원이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 가서 보니 지척에 하문 앞바다가 있었다. 이방익 일행의 숙소로 쓰였을 곳인데 이제는 옛적 문공을 모시던 사당이 아니었다. 사당 앞에 상품을 쌓아놓거나 입장객들이 신앙처인 듯 기도를 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이방익의 한글 표해록에는 하문을 지나 돌다리를 건넌다는 내용이 있다. 당초 취재팀과 자문단은 '서이방익사'를 참고해 그 다리가 '만안교'란 이칭이 있는 낙양교로 여겼고 천주에서 그 현장에 갔다. 하지만 권 작가는 나중에 문헌을 검토해보니 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이방익은 그 다리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넓은 석교이다. 좌우에 저자를 벌여 놓았는데 넓기가 얼마인 줄 모르겠고 장사꾼들의 오색 채선이 다리 아래로 연속해 왕래하는데 그 수를 알 수가 없다"고 묘사했다.

권=이방익이 하문부를 떠나 복건성으로 가는 장면에서 돌다리 이야기가 나온다. 이 대목에서 '서이방익사'에 쓰여진 '낙양교'만 주목했는데 하문에서 천주로 가는 동안 이방익이 목격한 다리는 '오리교'로 불리는 안평교였다. 연암은 안평교의 존재를 몰랐던 탓에 낙양교에 대해서만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낙양교는 이방익 일행이 그 후에 천주를 떠나 복주로 갈 때 이용했을 것이다.

▶지난 8월 복건성 상무위원 일행이 제주도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상무위원 측은 이방익 표류 여정을 밟으려 복건성을 찾았던 취재팀과 자문단의 활동을 소개하며 이방익의 인연을 토대로 두 지역의 경제, 관광, 인재 등 교류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권 작가는 앞서 중국 방문에서 이방익의 송환 노선을 토대로 복건성 일대를 잇는 '이방익 로드'를 만들자고 했다.

권=이방익 표해록에는 중국 사람들과의 긴밀한 접촉, 대화가 드러난다. 중국의 풍습과 문물을 비교 연구할 대목이 많다. 복건성 장례 행렬은 주자 가례에 나오는 내용으로 우리와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점도 알 수 있다.

복건성 지방지편찬위원회와 외사판공실 관계자를 만날 때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가 화두였다. 중국에서 두 나라의 긴밀한 교류에 대해 제대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특히 이굉 부주임은 고려와 송나라에 이어 복건성을 거쳐간 이방익의 존재에 관심을 나타내며 제주와 복건성의 교류를 활발히 이어가자고 말했다. 천주와 전남 광주가 이미 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번 탐방을 계기로 앞으로 제주도와 복건성이 이방익 관련 공동 세미나, 문화 교류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제주사람 이방익 표류 현장 탐방을 통해 제주도와 복건성, 나아가 절강성 등과 실질적 문화 교류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단순한 답사에 그칠 게 아니라 전문가 교류 등을 통해 좀 더 깊이있는 만남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거다. 이방익의 표류 기록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내고 되살리는 작업이 이어지길 바라며 앞으로 절강성 탐방을 기약해본다. <끝>

자문위원=권무일(소설가) 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

정리=진선희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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