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25)음식남녀

[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25)음식남녀
남방은 쌀, 북방은 면… 절·천·노·월·상·민·소·휘 8대 요리
  • 입력 : 2019. 11.21(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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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 익히는 ‘펑런’의 중국요리
마파두부·소동파 등 숱한 노력
문흘과 무흘의 양고기 굽는 법



음식남녀라고 하면 제일 먼저 타이완 영화 '음식남녀'(1994년, 감독 이안李安)가 떠오른다. 왕년에 요리사였던 홀아비 주씨朱氏는 장성했으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세 딸과 주말마다 모여 함께 식사한다. 그들은 가족이지만 서로 다른 직업,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아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당연히 서로 충돌하고, 각기 다른 길로 떠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족이다. 궁금하다. 이안 감독은 왜 '음식남녀'를 제목으로 썼을까?

이안감독의 영화 '음식남녀'.

음식남녀는 '식색食色'의 뜻이다. '맹자·고자告子'에서 고자는 "식욕과 색욕은 사람의 본성이다(食色, 性也)."라고 했다. 음식을 먹어야 살고, 남녀가 교접해야 종족을 이을 수 있다. 동식물 모두 '식색'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식과 색은 다른 욕구이지만 동일한 본성이다. 인간이 다른 동식물과 다른 점은 '식색'에 대한 욕구를 절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동물에게 있는 발정기가 사람에겐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은 동물과 달리 토하고 다시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래서 '예기·예운'에서 "음식, 남녀에는 사람의 '큰 욕구'가 존재한다(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게를 위주로 한 연회를 일컫는 해연(蟹宴).

오늘은 먹는 것부터 이야기하자.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신다. 중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중국인은 음식에 관한 한 참으로 유별나다. 그것이 문화를 이룬 것인지, 문화가 그것을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중국인의 음식문화가 독특한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특징이 있을까? 필자는 이를 다음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남방은 쌀, 북방은 면(南米北麵). 광활한 국토를 지녀 기후와 토양이 다르니 먹는 재료나 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북방은 강수량이 적고 건조하여 밭농사에 적합하니 밀, 고량, 좁쌀, 옥수수가 많이 나고 육고기도 많은데, 남방은 강수량이 많고 고온다습하여 논농사에 적합하니 쌀이 많고 물고기도 많다. 주식은 쌀밥과 면, 술도 황주와 백주로 각기 다르다. 일반적으로 중국 요리는 지역에 따라 절浙(절강), 천川(사천), 노魯(산동), 월월(광동), 상湘(호남), 민민(복건), 소蘇(강소), 휘徽(안휘) 등 8대 요리로 구분한다.

강소성 남쪽 양등호에서 나오는 민물털게 다자셰.

여기에 북경과 상해를 별도로 넣기도 한다. 예로부터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南甛北鹹, 東辣西酸)"라고 했는데, 문인 양실추梁實秋는 "강소와 절강은 단 것을 좋아한다"를 덧붙였다. 북쪽이 짠 것은 알겠는데, 서쪽 사천에 맵디매운 훠궈(火鍋, 중국식 샤브샤브)가 있고, 호남에 매운 고추가 있는데 어찌 '산酸'이라 하였을까? 그럼 "사천 사람은 매운 것을 두려하지 않고, 귀주 사람들은 매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호남 사람들은 맵지 않을까 두려워한다(四川人不파辣, 貴州人辣不파, 湖南人파不辣)"는 말은 뭔가? 각설하고 지역마다 먹는 것이 다르니 성격도 다르지 않을까? 당연하다. 이는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얼굴에 마맛자국이 있는 마씨 할망의 마파두부.

둘째, 팽임烹임과 요리料理. 우리는 일본어를 그대로 본 따 '요리'라는 말을 쓰지만 한어로 '랴오리料理'는 정리, 처리하다의 뜻이다. 대신 '펑런烹임'이란 말을 쓴다. '烹'은 삶는다는 뜻이고, '임'은 익힌다는 뜻이다. 음식을 조리한다는 것은 삶거나 익히는 일이다. 하지만 삶거나 익히는 것도 각기 다양한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돈은 약한 불에 장시간 삶는 것이고, 자는 센 불로 끓이다가 반쯤 익으면 중불로 바꾸고 완전히 익으면 다시 약한 불로 끓이는 것이며, 민은 볶은 다음 육수를 붓고 뭉근 불로 끓이는 것이고, 작灼은 뜨거운 물에 데쳐내는 것이다. 이외에도 고는 불에 직접 올려 구운 것이고 훈燻은 연기를 쐬며 익히는 것이다.

많다. 많다는 것은 그 쪽에 조예가 있다는 뜻이고, 조예가 있다는 것은 애써 연구했다는 뜻인데, 얼굴에 마맛자국이 있는 마씨 할망(진씨陳氏)의 마파두부麻婆豆腐, 소동파蘇東坡의 동파육東坡肉에 이르기까지 남녀나 귀천을 불문하고 누군가 나름 노력한 까닭이다.

소동파의 동파육.

셋째, 문흘文吃과 무흘武吃. 먹는데 무슨 문무의 구별이 있는가? 무흘의 사전적 정의는 따로 양념을 하거나 조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재료를 적당히 처리하여 먹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뜻도 있다. 예전 북경성에 양고기를 구워먹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종업원이 고기를 구워 식탁에 내놓으면 손님이 천천히 감상하면서 먹는 것이니, 이를 문흘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손님이 직접 화로 옆에서 젓가락으로 고개를 집어 구워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무흘이라고 한다.

2800년 전 게 요리 섭렵한 듯
송대 해보·명대 고흘에 소개
먹는 일에 귀천을 따질 일일까



지금 우리가 삼겹살을 구워먹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무흘은 당연히 백주白酒 몇 병쯤 마셔가며 먹어야 제 맛이니, 호방하되 원시적이다. 반면에 문흘을 하려면 음식에 따라 식기며 식탁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하고, 시끌벅적한 소란 대신 황주黃酒 몇 잔과 우아한 담소가 곁들여야 할 것만 같다. 본시 중국인은 식사를 할 때도 나름의 '예'가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시피 "먹을 때나 잠잘 때는 말을 하지 않는다(食不言침不語)"고 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둥근 원탁에 앉는 방식이 따로 있고, 주문하거나 음식을 먹는 방법에도 특별히 유의했다.

송대 음식 풍류.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는 '수산삼진水産三珍'에 속하는 '팡셰(방蟹)', 즉 '게'다. 아마도 세상에서 처음으로 게를 먹은 민족이 중국인인 듯한데, 서주西周 시대 '주례周禮'에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적어도 2700~2800년은 더 되지 않았나 싶다. 송대 사람 부굉傅肱이 아예 '해보蟹譜'라 하여 게의 계보까지 만든 것을 보면 어지간히 좋아하는 것 같다. 게는 바닷게도 있고, 민물이나 호수에서 나오는 것도 있다. 그 가운데 강소성 남쪽 양등호陽澄湖에서 나오는 민물털게 다자셰大閘蟹가 유명한데, 10월과 11월 사이에 알이 꽉 차고 영양분이 많은지라 가장 맛이 있는 때이다. 명대 미식가들의 지침서라 할 만한 '고흘考吃'을 보면 게를 먹을 때 필요한 도구 여덟 가지가 나온다. 작은 망치, 쇠방망이, 펜치, 족집게, 작은 수저, 갈퀴(포크), 긁개, 바늘 등이 그것이다(이후에는 64개까지 늘어났다). 문인, 아사雅士들이 모여 즐기는 이른바 '해연蟹宴(게를 위주로 한 연회)'은 게와 술(황주, 백주), 그리고 국화 감상과 시 짓기(賦詩)까지 포함한 '문흘'의 대표격이다.

남미북면(南米北麵).

먹는 것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똑같다. "임금에게 백성이 하늘인 것처럼 일반백성들에겐 먹는 것이 곧 하늘이니(王以民爲天, 民以食爲天)"(사기·역생육가열전력生陸賈列傳) 백성이야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는 함포고복含哺鼓腹에 행복을 느끼기 마련이다. 예의네 도덕이네, 뭐가 그리 복잡하고 바쁜가? "백성들이 해야 할 일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르며, 그저 잔뜩 먹어 즐겁고 배를 두드리며 노니니,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이 정도였다"(장자莊子·마제馬蹄) 그러나 먹는 것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따라 크게 다르다. 황제에게 제공되는 어선御膳과 가난한 이가 허기를 달래는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광주리의 밥 한 덩이와 표주박의 물 한 잔)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문흘과 무흘 역시 빈부귀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궁금하다. <심규호·제주국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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