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찬 맛집을 찾아서] (203)제주시 노형동 고래콩물

[당찬 맛집을 찾아서] (203)제주시 노형동 고래콩물
맷돌로 갈아 만든 콩물.. 보약 같은, 여름의 맛
  • 입력 : 2020. 08.21(금)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고래콩물은 맷돌로 간 콩 음식을 선보인다. 이상국기자

대표 메뉴 순두부·콩국수에 정성 가득
삶은 콩 껍질 제거하는 것만 열 번 반복
반나절 걸려 손님상에… 단골 발길 꾸준

어릴 적 어머니가 가끔 '콩물'을 만들어 준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콩만큼 몸에 좋은 것이 없다"며 "보약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콩은 단백질 등 영양분이 풍부해 예부터 서민들이 여름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다.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고래콩물'은 몸에 좋은 콩 요리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남편 김자간(52)씨와 부인 박미경(50)씨가 1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고래콩물은 맷돌로 간 콩 음식을 선보인다. 식당 이름에 붙은 '고래'는 맷돌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고래콩물이 쓰는 맷돌은 특별하다. 전라남도 맷돌 장인으로부터 1개당 400만원을 주고 들여왔다. 맷돌 2개로 하루 팔 콩을 간다. 부인 박씨는 콩을 무작정 갈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박씨는 "기계에 의존해 빠른 속도로 콩을 갈면 콩 씨알이 다 뭉개져 영양소가 파괴되고 본연의 맛도 잃는다"면서 "마치 사람의 손으로 가는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갈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정콩국수

고래콩물의 대표 메뉴는 '강원도순두부'와 '검정·노란콩국수'다. '강원도순두부'는 강원 지방에서 즐기는 초당순두부처럼 아무런 고명 없이 오로지 순두부만 들어가 있다. 뽀얀 자태가 마치 우유를 연상케 할 정도다.

박씨는 여름보다는 햇콩이 출하되는 가을철에 만드는 순두부가 빛깔이 더 곱고 하얗다고 했다. 생김새가 단순하다보니 손쉽게 '뚝딱' 만들어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 부부가 전하는 조리 과정은 고달프기만 했다.

부부는 매일 아침 새벽 6시 가게에 나와 전날 오후 9시부터 물에 불렸던 콩을 푹 삶는다. 이후 콩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제거하는데 이 과정만 열 번을 반복한다.

껍질을 제거한 콩을 맷돌로 갈아 콩물로 만들고, 콩물을 끓여 간수를 넣으면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탄생한다. 손님상에 순두부가 오르기까지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

강원도순두부 상차림.

박씨는 "콩 껍집을 잘 제거하지 않으면 입 안에 까끌까끌한 감촉이 남아 먹기 불편하다"면서 "껍질 제거 등 모든 조리 과정이 중노동이지만 손님을 생각하면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남편은 이 일을 하느라 살이 속 빠졌다"고 말했다. '강원도순두부' 의 첫맛은 달착지근하고 뒷맛은 구수했다. 콩 자체에 단맛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취향에 따라 양념장을 넣어도 되지만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그냥 먹는 게 좋다.

콩은 전라남도에서 공수한 서리태(검정콩)와 백태(노란콩)이다. 이 중 서리태는 일반 콩보다 가격이 40% 가량 비싸지만 서리태 특유의 고소한 맛을 포기할 수 없어 쓰고 있다. 콩국수 면은 쌀로 만든 것인데 잘 불지 않고 밀가루 면보다 영양분이 많아 쌀을 선택했다고 한다. 시원한 콩물에 탄력이 더해져 쫄깃한 식감이 돋보인다. 껍질 제거 과정만 열 번을 거친 콩물은 역시나 텁텁하지 않고 부드럽다.

부부는 콩비지를 손님에게 무료로 준다. 식당 입구엔 콩비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의 조리 방법이 적혀 있다.

부부는 고단하지만 큰 부침 없이 지금까지 식당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단골손님들 때문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단골손님이 자주 찾아준 덕분에 매출도 평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박씨는 "콩 본연의 맛을 낼 수 있는 식당이 이 곳뿐이라며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해달라는 단골손님 덕분에 힘을 낸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재료로 손님들에게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고래콩물은 제주시 달마루길 10-5에 위치하고 있다. 전골류, 비지찌개, 양념을 더한 얼큰이순두부와 육개장순두부 등도 판다. 대표 메뉴인 강원도순두부는 8000원, 검정콩국수와 노란콩국수는 각각 9000원과 8000원이다. 영업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이며 오후 4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휴식 시간을 갖는다. 문의 064-712-0031.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98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