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제주4·3 수형인 국가배상 소송 사실상 '패소'

[초점] 제주4·3 수형인 국가배상 소송 사실상 '패소'
7일 제주지법 제2민사부 선고공판 진행
옥살이 이후 발생한 손해 대부분 불인정
"오늘 재판 하나마나" 수형인들은 분통
  • 입력 : 2021. 10.07(목) 17:30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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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 결과를 듣고 법원 입구에 주저 앉은 제주4·3 수형인들. 이상국기자

제주4·3 당시 불법 체포와 구금으로 10개월 된 아들이 굶어 죽어도, 고문을 당해 장애가 생겨도, 집이 불태워져도 그 책임을 국가에 물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류호중 부장판사)는 7일 양근방(89) 할아버지를 비롯한 4·3수형인 18명(생존 12명·사망 6명)과 수형인 유족 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수형인들이 승소한 53억원대 '형사보상 청구 소송'이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라면, 이번 소송은 억울한 옥살이 이후 겪은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사실상 패소였다. 재판부는 국가가 수형인에게 1억원, 배우자에게 5000만원, 자녀에게 1000만원을 각각 배상하라고 밝히면서도, 배상금에서 앞서 지급된 형사 보상금을 빼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형인 18명 가운데 '배상금'을 받는 경우는 단 1명(2800여만원) 뿐이다.

 이러한 판결이 나온 이유는 수형인들이 억울한 옥살이 이후 겪은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1948년 12월 26일 불법 체포와 재판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육지 형무소로 이송되다 10개월 된 아들을 잃은 오계춘(99) 할머니의 경우는 "법원에 제출한 증거 만으로 가족이 사망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사망한 사실을 인정 하더라도 국가의 불법행위 때문에 사망했다고 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또 고문으로 인한 후유장애을 입었다는 수형인에 대해서도 "후유장애가 불법행위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으며, 출소 이후 경찰의 불법 사찰을 겪은 것에 대해서도 "제출한 증거 만으로 경찰이 불법사찰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재판부는 수형인들이 출소 이후 겪은 피해를 단순히 '파생된 결과'라고만 판단했다"며 "또 배상 범위를 일률적으로 책정했는데, 억울한 옥살이를 1년 한 사람과 10년 이상 한 사람이 같을 수 있냐"고 토로했다.

 이날 재판을 들은 수형인 양일화(92) 할아버지도 "형무소 출소 직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2년 동안 산으로 바다로 고된 방랑생활을 했다. 형무소 수감 때보다 힘든 시간이었다"며 "(이러한 고통을 인정하지 않은) 오늘 재판은 하나마나"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소송의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103억원으로, 1인당 적게는 3억원에서 많게는 15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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