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싸움 구경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싸움 구경
  • 입력 : 2021. 11.03(수)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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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의 대상에 '싸움'이 있다. 그 예로, 스페인의 투우, 격투기 시합, 소싸움, 닭싸움, 개싸움 등이 있다. 투우는 사람과 소의 싸움으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 잔인해서 금지하자는 여론이 있지만, 인기가 여전하단다. 격투기는 사람끼리 하는 난폭한 싸움이지만 요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소싸움과 닭싸움은 우리나라에서 민속놀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개싸움은 동물 학대라는 이유로 몇 년 전 법으로 금지됐다. 소싸움과 닭싸움에는 체급과 규칙 등 상세한 선수(?) 보호 장치가 있다. 하지만 개싸움은 상대가 죽거나 치명상을 입어야 끝나며, 간혹 도박이 개입된다.

싸움이 심할수록 경기규칙이 더 엄격하다. 요즘 유에프씨 같은 격투기의 인기 비결에는 엄정한 경기규칙과 공정한 판정이 기여하고 있다. 그 시합에는 허용되지 않는 기술 외에, 눈을 찌르는 것, 치명적인 급소를 타격하는 것, 욕설하는 것 등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고 한다. 심판은 시합을 공정히 관리하며,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심각하게 다치기 전에 싸움을 끝낼 수도 있다. 구경꾼들은 응원도 하지만 비판적 시각으로 시합을 감시하며, 수준 결정에 한몫을 한다. 자기편을 떠나, 정당하게 겨루는 선수와 공정한 심판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그러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질책을 보낸다.

스포츠가 아닌 '싸움'도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그 싸움에도 선수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기본적인 도의는 물론, 사회 통념, 그 분야의 격식과 불문율 등이다. 싸움은 그 과정에 규칙이 잘 지켜져야 구경할 맛이 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싸움들이 종종 보인다. 젊은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어렸을 때의 잘못이 낙인으로 남아, 그 사회에서 퇴출되거나 나라를 떠나야 하는 세상이다. 이처럼 냉혹하리만치 도덕적인 곳에서, 다 큰 어른들이 그보다 더하다 싶은 반칙을 저지르면서 싸우고 있다. 저속하고 거짓된 말과 행태로 상대를 난타한다. 시정잡배들이 벌이는 거침없는 싸움 같다.

어른들이 벌이는 이런 싸움은 구경하기에 매우 불편하다. 집단 지성을 존중하고, 국리민복을 위하노라는 이들이 많다. 그중에, 이런 구경하기 불편한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큰 걱정이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날 것 같고, 편을 갈라 동조 합세하는 도박판 같아 보일 때는, 저 위의 금지된 그 어느 싸움을 연상하게 된다. 안보거나 관심을 끄면 그만이라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좋은 선수들이 멋지게 싸우는 것을 편히 구경하고 싶고, 추한 짓을 야단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눈과 귀를 가리고 막아도 그 싸움이 보이고 들린다. 마치 그 싸움판에, 구경꾼이어야 할 '나'가 끌려가 섞인 느낌이다. 피할 수도 없고, 나아질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아직 겨울이 아닌데 무척 춥고 내년 봄, 삼월이 두렵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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