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23)월정리 촌집 살리기

[황학주의 제주살이] (23)월정리 촌집 살리기
  • 입력 : 2022. 02.22(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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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나면 차를 몰고 나가 아직 아무도 나와 있지 않은 월정리 해변까지 가는 일이 있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 아직 미명일 때 모래사장을 나 홀로 걷기 위해서라면 심리적으로 멀지 않은 거리이다. 해안도로와 모래사장이 엇비슷한 높이로 닿아 있어 바다의 이야기가 곧장 시작되는 무대 앞의 긴장감이 있고, 거기 사람도 나무도 없고 구름도 없는 모래 해변에 누울 수도 있으며 누워서 귀를 대볼 수도 있다. 도로에서 한 걸음이면 발이 닿는 미명의 바다, 물때가 맞으면 바다를 맞으러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이 한 명쯤 해변에 나타날 때까지, 하늘과 바다가 동트며 내게 숨을 불어넣을 때까지 나는 그곳에 머문다.

하루는 해변에서 밝아오는 마을 골목 안으로 발길을 옮기다 멈춰 섰다. 우연히 고개를 돌린 골목 모퉁이에 촌집이 하나 그림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잡아끄는 그 빈집 주위를 뒷짐을 쥔 채 어슬렁거리며 나는 내 어릴 적 어머니 생각에 빠졌다. 황토벽을 바른 초가집 사립문 앞에서 한복을 입고 찍은 어린 어머니의 흑백사진과 모습을 떠올렸다. 때마침 골목 건너에서 사람이 나와 인사를 나누고 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빈집 주인이었다. 노모가 사는 집이 너무 좁고 낡아 골목 건너편에 새집을 마련해 드리고, 세놓을 요량으로 구옥을 손보는 중이라 하였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아내의 손을 끌고 첫눈에 반한 사람의 표정으로 제주 촌집의 자태를 보여주려 다시 길을 돌려 월정리로 향했다.

용도를 정하기도 전에 그 집을 임대한 이유는 백 년된 촌집의 결을 그대로 살려두고 싶은 마음이 앞장섰던 탓이리라. 이미 문살로 만든 창문과 방문을 뜯고 일부 벽을 헐어 통창을 내놓은 것이 아쉬웠지만, 우리는 일단 거기서 공사를 중단시키고 목수에게 새로운 콘셉트를 줬다. 우선 더 이상 옛집 모양을 건드리지 마실 것, 15평 남짓한 본채의 절반을 무조건 주방으로 설계해주실 것, 비록 상태가 안 좋더라도 촘촘한 기둥과 서까래와 들보를 그대로 살려주실 것, 그리고 방의 벽지를 뜯어내고 드러난 황토 흙벽 자체만으로 내벽을 삼으실 것- 그리하여 지금 본채는 백 년된 흙벽과 목재를 그대로 노출한 채 주방과 최소한의 가구들을 앉힌 집이 되어가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림을 좋아해 가지고 있는 게 좀 있다. 흙집의 장점 중 하나는 단열성이 있으며 습기를 머금고 내뱉는 살아있는 집이라는 데에 있다. 더구나 흙벽 사이 사이에 목재 뼈대가 들어가 있어 자연스레 칸이 나누어진 관계로 거기 하나씩 그림을 걸면 황토 흙벽 갤러리가 될 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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