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재심서 판·검사 당황시킨 제주 여고생들

4·3 재심서 판·검사 당황시킨 제주 여고생들
중앙여고생 9일 제주지법 4·3 군사재판 '제10차 직권재심' 참석
직권재심 나선 검찰부터 무죄 선고 재판부 상대로 질문 세례
  • 입력 : 2022. 08.09(화) 12:36
  • 송은범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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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가 진행한 4·3 군사재판 제10차 직권재심에 참석한 중앙여고 학생 6명과 인솔에 나선 채기병 교사. 이상국기자

[한라일보] "무죄를 선고하셨는데요… 70여년 전 일을 어떻게 단정할 수 있나요?", "검사님, 이번 재판 준비하면서 뭐가 제일 어려웠나요?"

제주4·3 재심 재판이 '역사 교육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고생들이 직접 재판을 방청, 당찬 질문으로 판·검사를 당황시켰기 때문이다.

9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9일 군사재판 수형인 30명에 대한 '제10차 직권재심'을 진행했다.

|한라일보 요청으로 참석 2학년 6명 선고 후 의문점 질의

이날 재판에서는 특별한 손님들이 방청석에 앉았다. 본보 요청에 따라 제주도교육청이 소개한 제주중앙여고 2학년 학생 6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 학생들은 4·3과 법, 인권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로, 자진해서 재판을 방청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재판은 수형인 30명에 대해 전원 무죄를 선고하며 마무리됐다. 지난 3월 29일 40명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250명의 군사재판 피해자가 억울함을 푼 것이다.

이후 장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문답 시간을 자처했다. 4·3에 관심을 갖고 직접 법정을 찾은 학생들을 향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6명 중 정재희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피고인 모두가 무죄라고 하는데… 70여년 전 일을 어떻게 단정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장 부장판사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유죄로 선고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있다. 현대국가 대부분은 이러한 형사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서 "(4·3을 비롯해) 과거에는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체포해 가혹행위로 유죄를 결정 지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전되면서 개인의 인권과 자유는 그 무엇으로도 침해할 수 없다는 대원칙이 나왔다. 이 사건도 그 당시 증거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현재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직권재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족.

이어 "4·3 재판부를 이끌며 가장 신경써서 살펴보는 부분이 무엇인가"라는 강혜인 학생의 질문에 대해서는 "70여년 전 제주도민은 이념이라는 광풍에 휩싸여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졸속 재판으로 엄청난 희생을 당했다. 남은 유족들 역시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았다"며 "강혜인 학생이 그 일을 겪었으면 그 고통을 온전히 견딜 수 있겠나… 난 자신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법정에 출석한 유족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 분들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게 나의 마땅한 소임이자 책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질문은 검찰에게도 향했다. 김단비 학생이 "직권재심을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답변에 나선 변진환 검사는 "직권재심은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 군사재판처럼 졸속으로 처리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뒤 "특히 재판부에 재심을 청구할 때 빈틈 없이 근거 자료를 제출해야 선고가 빨리 나온다. 자료 미비로 재판이 길어지면 그만큼 고령의 유족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임종 유족회장 "4·3 관심 가져줘 감사.. 역사 교육의 장 되길"

문답이 끝난 뒤 강혜인 학생은 "이제까지 재판은 판·검사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판사가 주인공은 유족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정말 특별한 재판을 청취했다고 느꼈다"며 "앞으로 역사 쪽으로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오늘 재판 청취가 역사, 특히 4·3에 대해 사명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단비 학생은 "얼마 전 외할머니 장례식에서 우리 가족도 4·3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 마음으로 재판을 들으니 더욱 안타까웠다. 앞으로 더 관심을 갖고 4·3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재판장이 4·3에 대해 진심인 것 같아서 학생인 내가 봐도 감사하더라"고 덧붙였다.

이날 학생들의 질문을 지켜본 오임종 제주4·3 희생자·유족회 회장은 "기특하다는 생각을 넘어 4·3에 관심을 가져준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면서 "앞으로 재심 재판에 학생들이 많이 참석해 역사 교육의 장으로 발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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