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남의 월요논단] 요소비료는 검정 고무신

[현해남의 월요논단] 요소비료는 검정 고무신
  • 입력 : 2023. 05.15(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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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요소비료는 검정 고무신처럼 옛날 비료다. 요소비료가 최고라고 생각하면 공을 찰 때 검정 고무신이 축구화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농사지을 때 요소 사용은 조심해야 한다.

짚신 신고 다니던 사람들이 처음 검정 고무신을 맛본 것은 1920년대다. 한때는 수출 효자이기도 했다. 부젓가락으로 고무신에 이름을 새겨넣기도 할 만큼 귀한 신발이었다. 그러나 운동화가 나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요소비료도 검정 고무신과 같다. 퇴비로만 짓는 농사는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 질소가 1%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다반사였다.

1803년에 독일의 탐험가 '알렉산더 폰 흄볼트'가 칠레 앞 바다에서 새들의 분비물인 '구아노'를 발견했다. 구아노에는 질소가 15% 이상 들어 있고 요산 형태였다. 퇴비보다 약 30배 효과가 있었다. 유럽 선진국들이 구아노 쟁탈전이 일어났고 1879년에 새똥전쟁이라고 부르는 남미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구아노는 양이 부족해서 여전히 세계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1847년 아일랜드 대기근 때는 400만 명 중에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그러니 질소비료 개발은 세계 인류의 꿈이었다.

이것을 해결한 과학자가 '프릿츠 하버'이다. 하버는 1918년에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해서 질소가 46%인 요소비료를 개발했다. 이제 인류는 굶어 죽지 않게 됐다.

노벨위원회는 프릿츠 하버에게 "당신은 공기로 빵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라는 칭송과 함께 노벨상을 수여했다. 이제 요소비료 생산공장만 세우면 세계 어디에서나 질소비료를 생산할 수 있었다. 경쟁하듯이 요소비료 공장을 세웠다.

한국도 1960년대 초부터 충주에 세운 '제1비'를 시작으로 6개 국가 비료공장에서 요소비료와 일부 복합비료를 생산했다. 많이 생산할 때는 지금 비료 사용량의 1.5배인 160만t을 생산했다. 그때 농업인 교육에 사용하던 '농촌지도' 교재에도 요소비료 사용 방법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요소비료는 작물을 잘 크게 하지만 약해져서 각종 병과 해충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없던 노균병, 흑점병, 응애, 총채벌레 등이 들끓기 시작했다. 마치 새들이 맛있는 과일만 쪼아 먹듯이 요소비료를 많이 주면 병해충이 몰려들었다. 마늘 농사 수확 전에 요소비료를 사용하면 비상품인 '벌마늘'이 생산된다.

요소비료 필요성이 줄어들고 공장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국은 요소비료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코로나19' 때 '요소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요소를 만병통치처럼 생각하면 검정 고무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1960~70년대에 만든 '농촌지도' 교재대로 요소비료가 최고라고 얘기해서도 안 된다. 좋은 운동화가 많이 나왔듯이 요소보다 좋은 비료를 선택하는 안목을 키워야 제주농업이 발전한다. <현해남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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