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입동 유감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입동 유감
  • 입력 : 2023. 11.08(수) 00:00  수정 : 2023. 11. 08(수) 09:22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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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오늘이 '입동(立冬)'이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스물네 절기 중 열아홉 번째 날이다. 오늘을 즈음하여 산야에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속에 굴을 파고 숨는다. 이 모두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라고 한다. '입춘'부터 '대한'까지의 한 해를 하루 24시간으로 치고 셈하여 보면 입동은 19시, 즉 저녁 일곱 시가 된다. 이 시각은 낮일하는 사람들이 일과를 마무리하고 저녁의 휴식을 맞이할 때다. '입동'은 우리가 치열한 삶을 겪은 몸과 마음을 쉬이고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겨울 채비는 '정리'를 포함하면 더 좋을 듯하다.

올가을은 위대했다. 자연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축제는 무척 풍성했다. 하늘은 드높고 공기는 맑았다. 산하도 제 모습을 곱게 가꾸었다. 도·시 단위 축제, 여러 단체, 각급학교 동문회와 마을의 '한마음' 대회, 직장과 동호회의 친목 모임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동안 참았다가 치러지는 행사들이어서 그런지 얽히고설키면서 제주 섬 전역을 주야로 달궜다. 사방이 활기에 넘치고 사람들은 분주했다. 오랜 질곡에서 벗어나 좋은 시절을 구가하는 게 보기 좋았다. 계절은 지금, 양력 11월이니 만추(晩秋)요, 음력으로는 9월이라 계추(季秋)이니, '위대한 가을'은 아직 계속 중이다.

경우에 바르고 때를 아는 생명체가 아름다워 보이는 오늘이다. 겨울을 맞으면서 나무들이 낙엽을 떨구거나 동물들이 몸을 숨기는 행위는 정상적인 삶의 과정이자 생존의 방편이다. 이들은 겨울을 지내는 동안 영양분의 소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본능적으로 제 삶을 계절에 맞추고 있다. 생활의 내용이나 방식을 놓고, 상록수와 낙엽수의 등급을 논할 수 없다. 하면동물과 동면동물의 우열도 따질 수 없다. 절대적 가치로 보면, 낙엽수와 동면동물은 자연에 역행을 피하고 순응과 공존을 택하고 있다. 이들은 겨울 동안 자기를 성찰하고 더 나은 새봄을 맞이할 계획을 짤 것이다.

우리도 이 평안의 시기에 묵은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으면 좋겠다. 끔찍한 과거를 떠올리는 게 싫겠지만, 숨을 고르고 최근 몇 년 동안의 이 시기를 돌이켜보자. 계속되는 재앙에 두려움으로 떨었고, 보이지 않는 출구에 절망했다. 당연했었던 많은 일들이 불가해지면서 무기력함도 절감했다. 증상의 고통과 후유증이 대단했고 생명의 희생도 컸다. 인간의 탐욕이 원인이었고, 우리의 이기심이 극복을 더디게 했다. 이 참혹했던 경험을 우리는 '백신'으로 삼아 대가를 얻을 수 있어야겠다. 그런데 그럴 낌새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완전히 승리했기를 기대는 하면서도, 남은 두려움이 함께 어른거린다.

이제 2주일을 넘기면 첫눈을 본다는 '소설(小雪)'이다. 눈은 맑고 깨끗하게 우리한테 오고 올겨울은 평온할까. 그게 궁금하고, 낙엽수들과 동면 동물들이 부러운 입동 날이다. <이종실 오라동자연문화유산보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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