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재작년 이맘때쯤 필자가 '서귀포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조형물' 제작을 의뢰받아 설치한 적이 있다. 어린 날의 추억과 모교에 대한 사랑, 화합의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조형물 표면에 졸업생과 재학생이 직접 한 글자씩 쓴 교가 52자를 새겨 넣었다. 손글씨가 역사가 된 것이다.
손글씨는 인간의 역사와 시대 문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흔적이다. 문자 발명 이전에 인류는 동굴벽화나 암각화 등에 그림으로 삶의 흔적을 남겼고, 문자 발명 이후는 손 글씨를 써서 기록과 소통의 수단으로 삼았다.
손글씨의 역사를 보면, 고대 이집트는 파피루스, 중국은 죽간, 중세 유럽은 양피지 위에 글씨를 썼다. 종이가 발명되면서부터 손글씨는 효용성이 더 커지고 책을 필사하는 등 지식을 전달,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인쇄술의 발달로 손글씨의 역할이 줄어들고, 타자기와 컴퓨터의 등장으로 더욱 개인적인 영역으로 남겨지게 됐다.
그렇더라도 손글씨는 개성과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 문화권의 독특한 서체와 표현 기법은 예술적 가치를 지녀 개인의 기록이나 서예와 같은 예술 분야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드니 어린아이들도 핸드폰을 들고 노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 초등 교육에서 손글씨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디지털기기 사용이 늘어나며 손글씨 교육의 중요성이 잊혀가기 때문이다.
디지털 교육의 학습은 대체로 보는 것에 치중되다 보니 맞춤법, 문법, 문장 등의 언어 능력 발달에 문제가 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손글씨는 키보드 타이핑보다 뇌의 학습 관련 영역을 더욱 활성화시켜 학습 내용을 더 잘 기억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손글씨를 잘 쓰는 학생은 필기, 노트 정리, 시험 등 다양한 학습 활동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기기 사용으로 인해 심신이 불안정한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손글씨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일깨워 따뜻함과 진정성을 전달해 준다. 창의력과 개성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씨 연습을 통해 인내심과 같은 긍정적 인성을 함양할 수 있다.
지금은 디지털 기기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손글씨를 익히는 균형 잡힌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손글씨의 정수리에 서예가 자리한다. 현대에 와서 서예는 교양과 인성을 뛰어넘어 예술의 경계에 있다. 하지만 어렵고 배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중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서예에 대한 접근성도 손글씨의 장점을 찾아보는 데서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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