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생명의 춤

[신윤경의 건강&생활] 생명의 춤
  • 입력 : 2026. 02.25(수) 02: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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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생명은 조화와 균형이다. 밤하늘의 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안으로 당기는 내면의 힘과 밖에서 이끄는 타자의 힘 사이의 팽팽한 균형 속에 산다. 타자의 이끎이 희미해지면 맹렬히 응축해 자체 소멸하거나 타자의 당김이 과도해지면 산산이 부서져 타자의 바다에 흡수된다. 나와 타자 사이, 그 역동적인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 아래 욕망과 감정의 파도가 밀물과 썰물로 오가며 우리는 살아간다. 타자는 이 세상과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결코 분리될 수도 하나가 될 수도 없는 오묘한 짝꿍이다.

오늘날 기술은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를 넘어 이제 인공지능(AI)의 이름으로 우리의 시선과 생각, 나아가 몸마저 사로잡는다. 디지털은 몸과 장소가 없으며, 경계와 거리가 지워진 매끄러운 연결이다. 그러나 몸과 거리가 사라진 '좋아요'와 문자의 나열이 우리를 잘 살게 하고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가? 빠르고 편리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더 산만하고 조급하고 불안한가. 시간과 장소의 제한 없이 접속할 수 있건만 어찌하여 더 정처 없이 공허하고 외롭고 우울한가. 이토록 눈부신 기술의 발전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인가.

기후 위기 혹은 인공지능의 거대한 물결에 의해 인류는 수십 년 이내에 멸종하거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할지 모른다. 이 방식과 방향 그대로 살다가, 기계의 몸(그것을 몸이라 부를 수 있을까?)에 우리의 기억을 이식해 우주 어딘가로 날아가 다행성 종족으로 살면 그만인 걸까. 그렇더라도 최소한 우리의 기억에 책임이 있지 않을까. 지금 이대로의 기억을 이식하든, 마음에 들지 않아 조작해 이식하든 이는 또 어떤 부메랑이 돼 혹독한 미래를 가져올 것인가.

이제 우리는 타자의 얼굴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더 오래 마주한다. 사람보다 개인 비서화된 AI와 수시로 내밀하게 소통한다. 끊임없이 유입되는 자극과 정보에 사로잡혀 기다리거나 머물지 못한다. 디지털은 오직 계산할 뿐 주의 깊은 바라봄과 사유가 없다. 타인이나 자연과 달리 얼굴과 감정이, 특히 고통이 없다. 그러므로 AI와의 소통은 나로 가득한 자아과잉의 성채를 쌓는다. 나를 잊고 쉬게 하는 고요한 관조, 타자와의 말 없는 공명은 설 자리를 잃는다.

더욱이 즉각적인 욕구 충족의 일상은 우리에게서 설렘과 기대, 질문과 기다림, 꿈과 인내, 사라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앗아간다. 결핍이 제거된 풍요로 생명이 시든다. 생의 기쁨과 활력은 욕구의 충족과 비충족 사이, 그 신비한 계곡에서 피어나는 꽃이기에.

그럼에도 우리는 AI를 사용하고 그들은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두려움과 조바심으로 앞칸을 향해 달려가는 계산과 경쟁은 더 이상 우리 미래를 열지 못한다. 퇴행해 쪼그라든 사유와 관조의 힘을 회복할 때 공존의 새로운 시야가 열릴 것이다. 미래는 나와 당신의 몫이다. 부디, 우리 생명의 춤이 조화롭고 아름답기를.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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