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지역인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신화역사공원 공사로 인해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어지럽게 방치되어 있다. /사진=참여환경연대 제공
영어도시·신화공원 등 곶자왈 의미 축소하며개발의 노른자위 활용
곶자왈은 제주의 보물을 넘어 제주의 생존 조건이다. 곶자왈은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지역이다. 화산활동에 의해 분출된 용암이 지형을 따라 흐르다가 굳어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화산활동 직후에는 균열이 생긴 바위들로 얽혀있는 돌무더기의 황무지이지만 깨어진 돌 틈을 따라 빗물이 스며들어 일부는 지하수를 형성하고 나머지는 증발하면서 습도가 풍부한 지역을 이루며 곶자왈만의 독특한 생태를 만든다.
1. 곶자왈은 세계의 보물
곶자왈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역이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화산활동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지만 제주의 위치적 특징과 화산이 밀집된 특성, 용암의 특성, 기후적 특성 등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생태계다. 독특한 지형적 지질적 특성과 기후적 특성 때문에 여기에는 독특한 생태계가 발달하게 마련이다. 곶자왈 식물조사를 시작한 이래 제주의 다른 지역에는 없고 곶자왈에만 분포하는 식물이 1천여 종에 이른다.
2. 보물의 의미를 넘어 제주의 생존조건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곶자왈은 가히 세계적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곶자왈이 가지는 가치는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곶자왈은 지하수를 함양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곶자왈에 흐르는 물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곶자왈의 지형에 생긴 균열 때문이다. 균열을 따라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빗물을 지하로 보낸다. 지하수가 제주의 생존조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라고 부른다. 곶자왈의 숲은 엄청난 양의 산소를 공급하고 탄소를 없애는 역할을 한다. 이 또한 제주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생존 조건이다.
미래는 유전자 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곶자왈의 독특하고 다양한 생태계는 다른 지역에 없는 다양한 식물 유전자와 동물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유전자 전쟁의 시대에는 이는 유리한 조건을 넘어 다른 산업적 조건이 불리한 제주가 가질 수 있는 필수 생존조건이 될 것이다.
▲신화역사공원 부지내 원형보전지역이 위태롭게 밀려 나 있다. 줄로 묶여 있는 안쪽이 원형보전지역이다.
3. 곶자왈이 받는 대우
곶자왈은 과거 농경과 목축에서 버림받은 땅이었다. 돌무더기 땅은 농경지로 쓸 수 없었고, 목축에서도 극히 일부분만 이용될 뿐이었다. 그래서 막걸리 한잔에 땅을 주고 받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땅이었다. 이런 이유로 곶자왈은 싼 땅값만이 유일한 매력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돌무더기 땅을 어찌해 볼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중장비가 들어가 하루에도 수 백평의 곶자왈을 평탄한 지역으로 만들어 놓는다. 싼 땅값으로 인해 곶자왈은 처참하게 파괴될 운명에 놓였다. 곶자왈이 가지는 생태적 가치는 철저히 외면되고 싼 땅값으로 인해 개발하기 좋은 곳으로 대우받는 처지다.
▲개발지역에서 나온 기암괴석들.
4. 곶자왈 더 이상 훼손 곤란
곶자왈을 표적으로 삼는 개발사업은 다양하다. 골프장, 채석장, 대규모 리조트, 테마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사업의 규모와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 제주도의 사업승인을 얻어야 가능한 사업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승인된 곶자왈지역의 개발사업을 보면 소극적 개발을 넘어 적극적으로 파괴를 이끌고 있다. 특히 제주 서부지역 곶자왈지역인 안덕면 서광리와 대정읍 구억리 일대에 각각 신화역사공원과 영어교육도시는 제주도정이 나선 대표적 곶자왈 파괴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사업지역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추진하고 있다. 두 개의 지역을 합하면 약 240만평, 두 사업지역이 도로 하나를 두고 붙어 있어서, 제주 최대의 개발사업이다. 문제는 이 두 지역이 곶자왈 지역이라는데 있다. 신화역사공원을 한눈에 보려면 오설록 녹차밭 사이에 있는 남송악을 오를 필요가 있다. 남송악에 오르면 곶자왈 사이사이에 마치 벌레가 나뭇잎을 파먹은 듯 처참하게 곶자왈이 파헤쳐져 있다. JDC는 이 지역에서 목장으로 이용해 오던 지역을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들여 개발하고 있다고 하지만 길 건너 개발이 되지 않은 곶자왈 지역을 보면 이 말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거짓이라는 것과 제주도가 생각하는 곶자왈의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영어교육도시도 다를 바 없다. 이 지역을 조금만 파 내려가도 곶자왈의 클링커 층이 나오는데, 신화역사공원과 마찬가지로 숲이 우거진 일부 지역을 섬처럼 남겨 놓은 채 무참하게 파 나가고 있다.
▲남송악에서 바라본 신화역사공원 개발현장.
5. 생태계에 대한 무지, 생태맹
제주도가 생태맹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몰라서라기 보다는 개발의 현재적 가치에만 집착하고 있는 결과다. 곶자왈의 대부분을 파괴하면서 일부 섬처럼 숲을 남겨둔다면 이는 조경을 위한 장치로 밖에 역할을 할 수 없다. 대규모 지하수 함양지에 여기저기 넓은 아스팔트 도로를 내고 엄청난 면적의 아스팔트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곶자왈이나 도시지역이나 다르게 보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제주도가 바라보는 곶자왈의 폭은 매우 좁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무가 우거져 있어야 하고, 큰 돌들이 많아야 한다' 정도의 인식이다. 만약 과거에 숲이 우거진 지역이었으나 숲이 사라지면 곶자왈이 아니고, 관목 등 작은 나무들이 있는 곳도 제외된다. 아래에 무수한 클링커층이 존재해도 지표면에 없으면 곶자왈이 아니다. 곶자왈에는 잡목지도 있고 작은 자갈로 이루어진 지역도 있다. 숲지역과 잡목지역 초원지역이 하나의 거대한 띠를 이루며 상호작용하고 있는 곳이 곶자왈이다. 이를 부정하고 애써 곶자왈을 축소해석하려는 것은 마음이 개발에 쏠려 있기 때문이며, 곶자왈을 보존대상이 아니라 개발의 노른자위로 여기는 이유다. 오늘도 곶자왈 지역의 포크레인 소리가 거세다. 생태맹을 만드는 개발의 환상을 한꺼풀 벗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한 미래를 벗어날 수 없다.
<한라일보 - 천주교생명위원회-참여환경연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