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140만 평을 파괴한 현장만 남은 신화역사공원. 외자유치에만 목맨 결과다. /사진=참여환경연대 제공
아쉬움을 남기며 한라산 만인보를 마무리한다. 지난 4월부터 제주의 개발현장을 찾아 다녔다. 힘든 기행이었다. 걸음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왜'와 '무엇을 위해'라는 물음이 힘들게 했다. 개발이 남긴 긍정적 영향을 찾아보려 했지만 도민의 눈으로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1. 개발의 눈이 멈추는 곳
개발은 이윤을 찾아 움직인다. 이윤추구 자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어되지 않고, 환원되지 않으며, 극도의 이윤을 추구한 결과는 부도덕했다.
자연을 파헤치는 것만으로 이윤이 생겼다. 오름과 곶자왈이 개발예정지로 바뀌는 순간부터 이미 개발은 이익을 남긴다. 땅값 상승으로 인한 이익만으로도 개발은 이미 배가 부르다. 개발사업이 전부 이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보존해야 할 곳을 파헤치는 대부분의 개발은 이를 위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자연에 치명적인 상처만을 남기고 중단되는 개발사업도 발생한다. 이로 인한 피해는 개발이 떠 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원래의 주인들이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한다.
2. 제주도개발특별법 이후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은 개발의 주도권을 중앙정부에서 제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개발의 목적과 양상은 이전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과 차이가 없었다. 자연을 개척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이를 단기적이고 압축적으로 이용하여 이익을 내는 개발이 계속 이어졌다.
개발의 주도권도 제주로 넘어 왔다고 하지만 대규모 개발에 필요한 예산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보이지 않는 실질적 권한으로 남아있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이런 면에서 상당히 기만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도민들에게 결정권한이 이양된 것으로 보이지만, 재정자립도가 약하고, 대규모 개발은 거대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존성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제주도개발 특별법은 자본의 성격이나, 개발의 적정함과 무관하게 '어떤 성격이라도 투자만 하면 된다'라는 개발의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오름군락지의 송전탑과 풍력발전기. /사진=참여환경연대 제공
3. 제주도개발특별법의 다른 이름, 국제자유도시
1990년대가 제주도개발특별법의 시대면 2000년대는 국제자유도시의 시대다. 국제자유도시의 가장 핵심은 자유로운 투자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없애거나, 줄이겠다는 것이다.
자본은 그 지역의 보존해야 할 가치나 균형적인 산업개발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어떤 곳에 투자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만을 추구한다.
제주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리한 투자조건은 많지 않다. 다른 지역의 교통 편의성이나 인프라, 주변여건이 좋지만, 제주는 이런 점에서 상당히 열악하다.
결과적으로 개발의 표적이 된 것이 뛰어난 자연이다. 신화역사공원을 보더라도 이런 면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신화역사공원의 최초의 개념은 제주의 신화와 역사, 그리고 생태를 컨텐츠로 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신화역사공원을 보면 어떠한가? 신화역사공원의 컨텐츠는 자본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자본이 노리는 단기적으로 수익이 높은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거창한 계획하에 곶자왈 140만 평을 갈아 엎은 신화역사공원은 어느 도시의 택지개발지구처럼 파괴된 현장만 남겨져 있고, 그나마 투자된 부분은 항공우주관과 호텔 뿐이다. 오로지 외자유치에 목멘 결과이며, 국제자유도시라는 미몽의 결과다.
4.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지금까지 개발의 논리가 먹힌 이유는 개발이 경제적인 수익을 창출하여 제주도민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난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그럼 뭐해서 먹고 살 건데?' 혹은 '환경이 밥 먹여주나?'라는 반론으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환경이 밥먹여주고 있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좋은 시설을 찾아서 오는 것은 아니다. 제주가 깨끗한 자연을 가지고 있기에 찾는 것이다. 하물며 제주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이 다른 지역에서 더 좋은 가격을 받는 이유는 제주가 환경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이다. 공기와 물처럼 너무 밀접하고 가까워서 그 중요성과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난개발은 우리의 자산을 파괴하고 있다고 보아야 맞다.
우리 제주는 갈림길에 서있다. 유네스코의 트리플 크라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세계환경수도를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국제자유도시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치라고 하는 제주도정이 있다. 한라산 만인보를 하며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국제자유도시에서 추구하는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의 입맛에 맞는 개발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자본의 의도에 제주의 자연을 맡기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국제자유도시와 세계환경수도는 양립할 수 없는 비전이며, 제주의 미래를 자본의 의도에 맡기는 국제자유도시의 비전을 버리고, 세계환경수도의 비전을 선택하여 노력해야 한다. <끝>
<한라일보 - 천주교생명위원회-참여환경연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