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형님·삼춘, 잘 도와주십시오"

[백록담]"형님·삼춘, 잘 도와주십시오"
  • 입력 : 2014. 12.29(월) 00:00
  • 김치훈 기자 chi@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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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삼촌(삼춘)'이라는 호칭은 친근감의 표현이다. 처음 가는 식당에 가서도 음식을 주문할 때 '삼촌(삼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제주는 좁은 지역사회이며 거주인구가 최근 급증해 62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어느 동네, 어느 집,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으며 집안내력은 어떠한 지까지 금방 알 수 있는 사회다. 이 같은 공동체적 미풍양속은 경조사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속에서 아직도 남아있다. 제주지역의 일간지에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화촉'·'부고'란이 마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집에 누가 '승진'을 하던지, '학위'를 취득하던지, '시험'에 합격했는지도 축하 광고를 싣기도 한다. 경조사에 대한 지역의 특별한 관심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문이 없고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는 삼무의 섬 제주. 제주는 옛 부터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강했던 곳이다. 이러한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옛 제주는 태풍의 길목이며 물이 부족해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마을이 드물고, 잉여생산물을 저장해둘 정도의 비옥한 토지가 없던 땅이다. 때문에 고립된 섬이었던 제주 섬의 조상들의 삶은 풍요롭지 못했고, 이러한 가운데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은 혈연중심의 지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삼촌(삼춘)'이라는 호칭도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제주도와 도의회가 새해예산안에 대한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 도의원이 정무기능을 담당하는 정무부지사에게 '형님·삼촌, 잘 도와주십시오'라는 자세로 도의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지 못함을 질타한 일이 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돕고,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서로 축하해주는 미풍양속이 아직 자리잡고 있음이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시대. 항공기와 배편을 이용해 제주를 찾는 외지인들이 연중 1200만명에 이르고, 제주로 와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이주민들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도시는 점점 확장되어 가고, 제주 산업의 분야도 농업 등 1차 산업에서 서비스산업과 제조업 등으로 변화되고 있다.

예전의 제주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문화적 차이를 바로 보는 관점에 있어 어떤 문화·관습이 나쁘고 좋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몸에 익혀지고 용인되어온 모습들에 대해 자신의 사고와 자신들의 관습과 다르다며 나쁘다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주의 모습은 옛 제주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훨씬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며 과학기술 및 산업의 발달과 함께 다른 지역은 물론 세계 곳곳이 변화하는 것처럼 우리 제주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제주 지역사회의 뿌리 깊은 미풍양속을 모든 분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세상이 됐다. 교통과 정보통신 등의 발달로 지구촌은 하나의 생활권 안에 놓이게 되었고, 개인이나 기업·도시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것이 강조되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적용해야 할 부분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제는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국가의 법이나 제도를 비롯 업무처리 행태의 세계적인 기준 고려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세계적인 보편성이 고려되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시대다. <김치훈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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