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은 '이게 나라다'로 바뀌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탄핵 드라마는 대다수 국민들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작년 12월 9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헌재에 접수한 뒤 92일 만에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됐다.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133일 만이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한 촛불은 오히려 바람을 타고 성난 '민심의 들불'이 되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의 탄핵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사필귀정이다. 최순실 일당과 김기춘 등 호위무사에 갇혀 최악의 국정농단을 일으킨 말로다. 중국의 고사에 '비(非)는 도리(이치)를 못이기고, 도리는 법을 못이기고, 법은 권력을 못이기고, 권력은 하늘을 못이긴다'(非理法權天)고 했다. 민심은 천심, 곧 하늘이다.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원리를 새삼 확인해줬다. 탄핵심판 헌재 결정문은 이 점을 명확히 했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헌재 재판부 역시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선고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사사로이 함으로써 국민신임을 배신 불명예스런 퇴장을 당했다. 3월10일은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헌법 이념이 승리한 날이다.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광장 민심의 승리다. 이제 진정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
우리 앞에는 '가지 않은 길'이 펼쳐져 있다. 지난 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촛불집회가 시작됐을 때부터 가지 않은 길은 예견됐다. 불확실성이 사라진 만큼 가지 않은 길은 현실이 됐다. 가지 않은 길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길로 나가는 것과, 부정부패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다. 포스트 탄핵 정국은 어떤 길로 가야 하나. 이미 국기에 대한 맹세에 나와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우리 국민 누구나 국민의례를 할 때마다 다짐하는 말이다. 대통령 탄핵에 나타난 민심이 바로미터다.
서양 법언에 '지연된 정의는 정의의 부정'(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탄핵정국을 이끈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개혁에, 적폐청산에 게을리 한다면 정의를 바로세우기는 그만큼 어렵다. 국정 농단을 가능케 한 법과 제도의 정비,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사회의 잘못된 병폐와 부조리들을 바로잡는 일 등 숱한 과제가 놓여 있다. 국정농단을 보며 상처받은 사람들과 탄핵에 반대했던 마음까지도 어루만지고 치유와 화합,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켜 나가야 한다. 그게 포스트 탄핵 정국의 가야 할 길이다.
촛불의 힘으로 새로운 봄이 활짝 열렸다. 엄동설한을 견디며 외쳐온 시민혁명의 힘이다. 하지만 진정한 봄은 아직이다. '춘래불사춘'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의의 실현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님을 우리 사회는 똑똑히 경험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묻고 다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됐나.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이윤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