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의 백록담]다시 한번 "잊지 말자"는 약속

[이현숙의 백록담]다시 한번 "잊지 말자"는 약속
  • 입력 : 2017. 12.04(월)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좋든 싫든 시시각각 뉴스를 마주해야 하는 직업인 탓에 뉴스에 무감각해질 법도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최근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뉴스는 당연히 제주의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생 고 이민호군의 사고와 죽음이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무서울 정도로 마음 아픈 구호가 초겨울 어둠을 뚫고 울려 퍼졌다.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사고로 숨진 특성화고 고 이민호 군을 추모하는 촛불이 12월의 첫 밤과 두번째 밤, 제주시와 서귀포시 광장에 잇달아 켜졌다. 고 이민호군은 현장실습을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고, 남겨진 우리에게 할 말이 많은 듯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활짝 피지 못한 채 초겨울 밤 빛나는 별이 되고 말았다. 세월호에 타고 있었던 아이들이 그렇듯 이유도 모른 채 불가항력적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저 안타까운 죽음으로 묻힐뻔 했던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사회적 모순과 어른들의 안전불감증 같은 '모순'도 함께 드러나면서 파장과 충격이 컸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이석문 교육감은 임기내내 특성화고 홍보에 엄청난 예산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런 그가 사고 이후 20일이 지나서야 고개를 숙였다. '취업명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학생을 유치하는데 급급했을 뿐 학생들의 안전망 구축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현장실습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들은 부모에게 더없이 착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을 것이다. 취업이 힘든 시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현장실습 후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켠은 마음 짠해지면서 뿌듯했을 것이다. 이렇게 가슴 아픈 사고와 죽음을 마주할지 모른다는 것을 차마 예상이라도 했을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을 그 마음을 같은 부모라고 해도 차마 헤아린다고 말하기 미안하다.

지난해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청년의 가방 속에 있었던 '미처 먹지 못한 사발면'의 사진과 영상이 떠오른다. 힘겨웠던 청년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민호군도 아침으로 먹기 위해 주말이면 사발면을 챙겨야 했다고 한다. 당시 대한민국의 반성과 다짐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숨죽였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나섰던 학생들이 들려주는 또다른 이야기들은 '어른'으로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에는 정부와 교육당국, 정치권까지 나섰다. 이것이 한때의 호들갑이어서는 안된다.

또 하나 울컥했던 뉴스는 지진피해가 발생했던 포항지역의 뉴스였다. '고3 수험생을 둔 워킹맘'인지라 '수능 1주일 연기'에 따른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수능 연기'는 '신의 한수'였다. 그것은 우연히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 정확한 상황 판단과 정부와 교육당국의 발 빠른 움직임, 중대 결정에 따른 사회적 협조시스템 구축 등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포항의 수험생들을 위한 한 호텔의 '신의 한수'도 그렇다. 지진피해 수험생들은 집에 큰 피해를 입고 매일 잠자리를 걱정하고 옮겨 다닐 뿐만 아니라 잠도 못 자며 생활하는 트라우마가 생겨야 했다. 그 소식을 들은 호텔은 수험생들과 가족을 위해 객실을 제공했다. 그뿐이 아니다. 호텔 조리사들은 수능시험을 보는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도시락을 싸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이들의 세심한 배려로 마음을 다잡았을 수험생과 그 가족이 남긴 편지 속 문구는 한글자 한글자가 감동을 준다.

누구도 그렇듯, 그들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막막함 속 호텔의 따뜻한 배려는 그들에게 빛이었을 것이다. 어둠이 깊으면 별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만약 세상을 떠난 고 이민호군에게도 그 따뜻함이 미쳤다면 어땠을까. 이제 청소년들이 차별받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어른들의 '신의 한수'를 기대한다. <이현숙 서귀포지사장·제2사회부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07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