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숙의 한라시론] 코로나와 그림자 노동

[민무숙의 한라시론] 코로나와 그림자 노동
  • 입력 : 2020. 10.08(목)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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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 기간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명절 스트레스로 인해 가정 내 갈등이 높아졌다거나 홈쇼핑 매출이 높아졌다는 등 명절 후유증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 불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 방문이나 친지 간 모임을 자제했고, 덕분에 여성들의 노동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 감소한 최초의 명절이 되었을 듯하다.

그러나 명절 기간은 금세 끝났고,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이 장기화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회적 돌봄체계가 무너지면서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시간이 훨씬 늘어나고 있다. 최근 여성노동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성의 돌봄노동 시간이 2~6시간 늘어났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등 공적 돌봄 체계가 마비되자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 책임을 떠맡은 것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가정 내 돌봄노동은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지만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무급이며 생산활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반일리치가 말했던 소위 그림자 노동의 하나다.

역대 정부는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예산을 투입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 가구의 부부간 가사노동시간의 차이는 큰 변화가 없다. 2019년 맞벌이 가구의 여성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 7분으로 남성의 54분보다 2시간 13분 더 많다. 통계청 생활시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5년간(2004~2019)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는 고작 20분 정도만 증가한 것으로 그쳤는데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는 수치이다. 여성이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비중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남성이 재생산활동에 참여하는 비중은 거북이 걸음보다 느리다. '나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여성들의 외침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다.

돌봄노동의 부담은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적신호를 보낸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제주도민 10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10명 중 6~7명이 우울함을 호소했고, 이러한 코로나 블루 현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10%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는데 가족관계가 나빠진 일차적 원인은 가정경제의 어려움으로, 두 번째는 가사노동의 급증으로 나타났다. 또한 코로나로 인한 육아휴직이나 무급휴가 신청 비율이 여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결국 위기상황에서 가족에게 전가되는 돌봄노동의 부담은 여성을 또다시 노동시장에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대비책으로 뉴딜 정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정작 가장 큰 위기를 맞은 돌봄에 대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정부 정책이 여전히 성 인지적 관점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로를 돌보는 노동이 거부된다면 우리 사회는 아마도 작동을 못하고 멈추게 되지 않을까? 여성의 무급노동에 기대온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를 차제에 제대로 평가해 그림자 노동이 아닌 선명히 보이는 노동으로 만드는 일 또한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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