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161억 가파도 프로젝트가 남긴 것

[진선희의 백록담] 161억 가파도 프로젝트가 남긴 것
  • 입력 : 2021. 08.02(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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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찾은 가파도는 땡볕 아래 자전거를 타고 해안가를 돌거나 섬의 풍경을 간직하기 위해 휴대전화 카메라 버튼을 누르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가파도행 여객선에 흐르던 최백호의 노래 '가파도'는 이 섬이 더 이상 '변방'이 아님을 말해줬다. 코로나19 이전 청보리축제 기간엔 수만 명이 오간다는 섬에서 "가파도 가봤니?"란 '가파도' 속 가사는 "아직도 못 가봤니?"로 들렸다. 그날 섬에 잠시 머무는 동안 마을회관에선 덩치 큰 차량들의 골목길 운행을 자제해달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이곳에 '가파도 아름다운 섬 만들기 프로젝트'가 있었다. 대기업인 현대카드는 일종의 아이디어를 짜내 가파도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예산은 전부 제주도에서 부담한 사업으로 지금까지 총 161억원이 투입됐다. 현대카드 측은 우리나라 3300개가 넘는 섬 중에서 그 섬만이 지닌 특별한 매력으로 주목받는 곳이 드물고 방문객이 늘면서 섬의 자연환경과 상권 등 고유한 생태계가 훼손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가파도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파도는 원하던 방향으로만 흐르진 않았다. 지난 1월 제주도감사위원회 감사 결과 숙박시설 '가파도하우스' 등 프로젝트 건물 조성 과정에 위법성이 지적됐고, 앞서 작년 1월 현대카드는 2018년 개관식을 열었던 창작공간 가파도 에어(Artist in Residence) 운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을 제주도에 알렸다. 2015년 '제주특별자치도 가파도 아름다운 섬 만들기 지원과 운영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는 등 지자체가 관심을 쏟았던 가파도에서 프로젝트로 탄생한 곳곳이 그렇게 가동을 멈췄다.

제주도는 2013년 이 프로젝트가 시동을 걸 무렵 일본의 나오시마를 롤 모델로 제시했고 실제 지역민들과 현지를 방문했다. '문화예술 섬'이란 지향점에서 유사성이 있을지 모르나 두 섬은 출발이 다르다. 일본의 대표적 교육기업 베네세 그룹의 후쿠타케 재단이 이끄는 예술 활동을 일컫는 '베네세 아트사이트 나오시마'엔 아트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기업의 일관된 의지와 수십 년에 걸친 투자가 있었다. 제주도는 과정이 아니라 그 결과만 봤던 게 아닐까.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쇠락하는 곳이라는 익숙한 '섬' 이미지로 접근한 탓에 지역과 밀착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야트막한 그 섬을 그대로 둘 순 없었을까.

역병의 기세에도 휴가철을 맞아 제주 섬으로, 다시 부속 섬으로 인파가 밀려드는 시절에 휴양지의 '고립'을 경험할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방인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도 어느새 SNS상에 사진으로 도배되며 '핫스폿'으로 떠오른다.

가파도 에어에 입주했던 페루의 현대미술 작가 엘리아나 오따 빌도소는 현대카드의 홍보 자료에서 그 섬을 "예술의 수도원"이라고 불렀다.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공간이 집중과 몰입을 선사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6월 30일 기준 인구 수 134세대 216명인 가파도가 그처럼 '유배의 즐거움'을 주려면 이젠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진선희 부국장 겸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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