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제주도립 중광미술관' 재고해야

[진선희의 백록담] '제주도립 중광미술관' 재고해야
  • 입력 : 2021. 11.22(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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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공문화기반시설이 들어선 과정에 비하면 말 그대로 일사천리다. 지난 6월 11일 미술품 기증서가 제주도에 접수됐고, 그달에 미술 전문가들로 수증심의위원회를 열어 기증품을 모두 받기로 했다. 7월 1일에는 기증자, 제주도지사, 제주도의장 3자가 업무협약을 맺었다. 9월 14일엔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지구 공공수장고로 기증 작품이 향했다. 그 뒤 10월 8일 미술관건립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같은 달 25일엔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투융자 심사를 마쳤다. 이달 말 공유재산 관리계획 심의, 12월 미술관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수립 용역 등을 완료하면 내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에 설립타당성 사전평가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가칭 '제주도립 중광미술관' 이야기다. 장르가 다르긴 해도 지난달 제주시 도남동에 문을 연 제주문학관이 도내 문학 단체가 건립 의지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이래 18년 만에 성사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가히 '빛의 속도'다. 도비 5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700㎡ 규모로 저지문화지구 내 제주현대미술관 인근 도유지에 세우겠다는 중광미술관은 진행 과정의 빠르기 만큼이나 이례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제주도의회 의장이 협약 당사자로 나서 "기증자의 의도, 작가의 예술정신 및 작품세계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기증 작품이 전시될 미술관이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명소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애를 쓴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제주도에 미술품을 기증한 이들이 적지 않고 일부는 공립미술관 내 상설전시실에 놓이거나 '작가 미술관'으로 태어났다. 이 과정에서 일방통행식이라는 비판이 거듭 제기됐다. 공립미술관 수가 증가하고 기증이 늘면서 논란의 정도도 커지고 있다.

이번 역시 다르지 않다. 도자가 대다수인 432점의 기증품 면면과 액수가 과대평가됐다는 등 컬렉션 단계를 넘는 공립미술관 조성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중광이 생전에 기행, 파격의 예술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나 과연 확장성을 갖고 저지문화지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제주 출신임을 내세우더라도 유사 사례를 따져보면 형평성을 잃는다고 했다. 앞으로 제주와 연고가 있는 '작가 미술관'을 얼마나 더 공립으로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남는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내년이면 20주기인 중광의 작품을 다룬 평문이나 논문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제주도는 지난 6월 기증 제안서를 받았을 때 미술계 등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가져야 했다. 독립된 건물 형태의 미술관 조성을 전제로 기증 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미술계의 한 인사는 이번 일에 대해 "반드시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도의회는 공공시설이나 기관 설립을 추진할 때마다 "도민 공감대 형성"을 주문해왔다. '내로남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제주도와 의회는 제대로 된 공론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진선희 부국장 겸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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