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다시 그날의 약속을 떠올리며

[진선희의 백록담] 다시 그날의 약속을 떠올리며
  • 입력 : 2022. 01.10(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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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할 행위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일이다. 인간이 망각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 사회는 계약, 교환, 거래 시 그 약속이 구속력을 갖도록 여러 장치를 심어놓는다. 소소한 약속도 그것을 깰 경우 비난이 따르지 않는가.

새해 이 지면의 첫 글에서 약속 이야기를 꺼낸 건 2022년은 공약(公約)들이 쏟아지는 선거의 해이기 때문이다. 공약은 정부, 정당, 입후보자 등이 어떤 일에 대해 국민에게, 지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한다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그 공약이 헛된 약속인 공약(空約)으로 끝이 나는 걸 경험해왔다. 몇 개월 후면 막을 내릴 민선 7기 제주도정이 내걸었던 문화예술 공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민화합공약실천위원회가 2018년 9월 약 700쪽 분량으로 펴낸 '제주가 커지는 꿈-도민과 함께' 공약집을 다시 들여다본 결과다.

공약집의 '약속 14'에 묶인 '문화예술체육' 분야 중에서 문화예술에 집중한 실천계획은 제주 역사문화 정체성 창달 사업, 제주 역사문화 연구 편찬 사업, 거점형 콘텐츠 기업과 창작지원센터 지원,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 문화예술 창작과 향유 기회 확대 등 크게 5개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단계별로 행할 이들 공약의 세부과제는 21개에 이른다.

제주문학관 건립처럼 민선 7기 들어 마침내 현실화된 공약도 있고, 서귀포시 문화예술도시 조성 활성화처럼 사업 성격상 해를 넘겨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 제주에 유배됐던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활용한 '탐라비림' 조성처럼 일찍이 적절성을 놓고 입길에 오른 공약도 남아있다. 제주도립국악단과 도립극단 신설은 관련 단체에서 제주도에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껏 메아리가 없다.

특히 제주학센터의 재단법인 전환과 제주예술인회관은 지역 사회의 관심이 높은 공약임에도 제주도의 행보는 소극적이다. 공약집에 명시된 가칭 '제주학연구재단'은 제주학 진흥을 위한 종합연구기관으로 2019년 개원을 목표로 뒀지만 간신히 '제주학진흥원(가칭)' 설립 타당성 용역을 마친 상태다. 이 공약은 다른 문화예술 공공 인프라 조성 과정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설립)추진위원회' 하나 없이 세월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제주예술인회관 조성은 제주시 원도심 건물 매입 문제로 이미 논란이 시작된 상황에서 '한짓골 제주아트플랫폼'이란 이름을 병기하면서 험로를 예고했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제주도는 이제라도 해당 시설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남은 절차의 재개나 중단 여부를 정해야 할 때다. 제주예술인회관이라는 공약을 내세우며 문화예술계에 생색은 냈지만 정작 제주 예술의 거점 공간을 추진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우리는 또다시 수많은 약속들과 마주할 것이다. 상대방이 어긴 약속으로 인해 쓰라렸던 기억을 되풀이해 겪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지난 공약들이 잘 지켜졌는지 짚어야 한다. <진선희 부국장 겸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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