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전국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월동무, 양배추, 당근 등 제주산 월동채소 가격이 줄줄이 폭락중이다. 산지에서 수급조절 없인 가격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판단에 제주도와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로 당근은 시장격리가 이미 진행중이고, 양배추도 이달안으로 250㏊가 격리될 예정이다. 농작물을 출하하는 것보다 폐기하는 쪽이 낫다며 애써 키운 농산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일이 '어쩌다'가 아닌 '일상'이 돼버린 암울한 현실 앞에서 농민들은 절망한다.
제주지역 1차산업의 지역내총생산 비중은 8.8%(2019년 기준)로 전국(1.8%)보다 4.9배 높아 지역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어 2020년 도내 농가인구는 7만9797명으로 2015년(9만3404명) 대비 14.6% 줄어 감소율이 충북(-17.0%) 다음으로 높았다. 고령화도 심각해 도내 농가인구의 28.8%는 65세 이상이다.
젊은 인구가 떠나기만 하고 유입은 미미해 농촌에선 외국인노동자 없인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인건비와 비료 등 자재값 상승에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쏟아지는 다양한 수입농산물과 경쟁하느라 농사를 지을수록 부채는 쌓이고 있다.
다시 찾아온 대선의 계절, 역시나 1차산업 관련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의 삶이 어떻게 나아질지 체감되는 정책보다는 후보와 가족의 사생활 폭로가 쏟아지며 국민의 피로감만 늘어가는 와중에도 특정 연령대를 겨냥한 달콤한 공약들은 이어진다. 이대남(20대 남성)을 겨냥해 구체적인 재원마련 방안은 없이 병사 봉급을 월 2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거나,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자 중 비싼 비용 때문에 급여대상서 제외된 신약을 사용하지 못해 고통받는 이들이 적잖은데 툭 튀어나온 탈모치료에 건강보험 적용 공약은 탈모가 생명과 직결되는 치료보다 더 시급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 정책은 풍년이 들면 갈아엎고, 생산량이 감소해 가격이 오르면 값싼 수입산을 푸는 식이어선 안된다. 중장기적인 수급계획과 근본적인 농정개혁을 통해 농민들에게는 적정가격을 보장하고, 소비자들에겐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고민은 1970년대 80%대였던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이 2019년 기준 각각 46%, 21%까지 급락한 상황에서 더 이상은 늦춰선 안된다. 쌀을 제외한 밀·콩 등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국제원자재값 폭등을 경험했다. 요소수 대란에서 돈이 있어도 세계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사올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식량안보 확보를 위한 주요 식량작물의 품종 확대를 통한 외래품종 대체, 일정 규모 이상의 농지 보전, 기후위기 대응책, 친환경농업·치유농업·청년농 육성, 유통단계 축소로 농가소득 높이기,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보전을 위한 지속가능한 농업 정책이 대선 공약에 담기고 국민적 공감대를 쌓아가면서 구체화돼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의 토대가 만들어지길 농업인들은 고대하고 있다. <문미숙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