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44)제주막걸리

[황학주의 제주살이] (44)제주막걸리
  • 입력 : 2022. 07.26(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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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성산포에 제법 아는 사람이 많다. 제주살이 초기에 근처 한적한 마을에 몇 해 살았던 탓이다. 그때 만난 사람들을 지금도 벗하고 지낸다. 연세 200만원 하는 농가에서 조천읍으로 이사 올 때 집을 사서 왔다. 연세로 살던 농가에도 마당이 넓었지만, 집을 사서 이사 온 지금의 집 마당은 더 넓고 깊다. 그런 마당을 관리하는 날엔 바로 제주막걸리가 있다.

성산읍 외진 동네에 살 때 돌담을 따라 마실을 다니다 보면 귤밭이나 나무 아래 앉아 주민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나에게 아는 체를 하고 술잔을 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먹어보니 내가 생각하는 옛날 막걸리와 달리 담백하고 구수한 생탁주의 그 라이트한 맛이 그만이었다. 그 후 제주막걸리를 애정하게 됐다. 요기가 되고, 천천히 딴생각하며 나누어 마실 수 있어 좋다.

어느 저녁 슬슬 걸어 내려가 한 잔 하려고 혼자서 동남 사거리 작은 술집에 갔다. 절대로 관광객이 올 수 없는 술집에 앉아 제주막걸리와 두부김치를 먹는데 한 테이블 건너에서 누군가 '신형철'이라는 이름을 거론했다. 그때가 제주에 이주해 내려온 2014년 겨울이었다.

신형철은 1976년 생이니까 그때엔 삼십대 중반의 약관으로, 문단에 막 글 잘 쓰는 평론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무렵이니 글 쓰는 웬만한 사람들도 아직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자가 많을 즈음이었다. 나는 눈이 번쩍 뜨이며 신형철의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까지 주어대며 이야기에 열중하는 중년의 사내가 궁금해졌다. 차림새로 보니 마치 잠자다 아무거나 줏어걸치고 나온 동네 주민에 영낙없었다.

나는 가만히 술집 주인을 불러 "저 분이 누구시냐?"고 물었다. 마을에서 가게를 하는 단골손님이라 했다. 나는 다시 "그럼, 문학을 하는 분이신가?" 하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문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전공자이고 일 또한 문학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외람되지만 술집 주인에게 그분을 좀 불러달라고 부탁을 넣었다. 그러자 그이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내 테이블로 건너왔다. 그래서 인사를 나누게 됐는데, 더욱 놀라운 건 나는 시 쓰는 아무개라고 소개하자 내 시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기는 그냥 책을 좋아하는 놈팽이 정도라 했다. 가게에서 손님 없을 때 책을 보고 저녁 시간엔 지인들과 막걸리를 먹는 게 일과인 자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다시 한번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제주막걸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비슷한 것일 것이다. 문학이란 독자, 작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제주막걸리 또한 주변의 세상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이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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