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주愛빠지다] (12)제주고 야구부 박재현 감독

[2022 제주愛빠지다] (12)제주고 야구부 박재현 감독
"모든 아이가 그라운드에서 행복하게 꿈 키우길"
  • 입력 : 2022. 09.01(목)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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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고 야구부를 이끌고 있는 박재현 감독이 학교 야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제주 야구'가 자립할 수 있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은기자

[한라일보] 한 통의 전화가 계기가 됐다. "제주고 감독으로 와 줄 수 없겠냐"는 제안이었다. 아마추어 야구부 코치로 시작해 케이티 위즈(kt wiz), 삼성 라이온즈 같은 프로야구단에 몸담았던 그에겐 쉽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해체 위기'라는 말이 따라붙고 선수가 10명뿐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결정까진 10분이 채 안 걸렸다. 이전에 비하면 분명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그에겐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지난해 3월부터 제주고 야구부를 이끌고 있는 박재현(50·사진) 감독의 이야기다.

감독이 돼 마주한 제주고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대학 야구부 코치 때 전지훈련으로 찾은 적이 있었지만 야구장 시설부터 손봐야 할 곳이 많았다. 그때부터 학교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흙으로 덮여 있던 외야에 천연잔디를 깔고 다 낡은 펜스도 새롭게 교체했다. 박 감독은 "이제는 야구장 형태가 갖춰졌다"며 "휴대폰으로 찍어둔 사진에 모든 역사가 담겨 있다"며 웃었다.

분위기도 바꿔야 했다. 선수들은 적은 수에 제대로 된 훈련조차 못해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였다. 박 감독은 "투수가 타자도 하고 수비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떠올렸다. 경기 성적보다 선수들이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중요했다. 2000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하며 '스파르타식' 훈련에 익숙한 그였지만 다그치지 않았다. 선수들이 먹고 입는 것부터 신경 쓰며 표정과 움직임을 살폈다. 아이들이 주눅들지 않도록 '긍정의 말'을 쓰겠다는 다짐도 더했다.

프로야구단 코치서 제주고 감독으로 또 다른 시작
열악한 시설 손보고 분위기 바꾸며 기적 같은 첫 승
"야구부 연계 육성 등 '제주야구' 자립 선순환 필요"

훈련 환경과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선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지 않던, 기적 같은 '첫 승'도 찾아왔다. 지난해 5월 29일 '2021 고교주말리그' 첫 경기에서다. 제주고에겐 1049일 만에 41연패를 끝내는 값진 승리였다. 박 감독이 온 지 약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전반기 6게임은 거의 다 콜드게임이었습니다. 선수 10명으로 이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시합을 완주하는 데 집중했지요. 그런데 그날 갑자기 선수들의 기량이 올라왔습니다. 7회에 7 대 3 상황에서 주장이 쓰리 홈런을 치며 10 대 3이 됐고, 7회 말에 KKK(3타자 연속 삼진 처리)로 경기를 이기게 된 거죠. 아이들도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긍정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깊이 생각하게 됐지요."

제주고는 한 해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현재는 선수도 22명으로 늘었다. 다른 지역 고교 야구부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숫자이지만 이제야 비로소 선수마다 전문 포지션을 가지게 됐다. 프로야구 30년 경력의 조규제 코치와 야구선수 출신의 김선현 코치, 학교와 학부모 모두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 모든 게 맞물려 돌아가며 '전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박 감독은 "올해 지금까지 4승을 거뒀다"며 "제주 야구의 제2의 전성기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제주에 온 지 2년이 채 안 됐지만 그는 "제주사람이 다 됐다"고 했다. 지역 특유의 연고주의에 상처도 많았지만 언제부턴가 섬을 떠났다 돌아올 때면 제주의 품이 더없이 편하다. 학교 야구장 위로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하늘은 숨가쁜 일상에 위안이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업무와 선수 지도, 주말 연습 경기까지 매일이 빠듯하지만 제주는 새로운 바람을 품게 한다.

"프로야구 선수 중에는 제주 출신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초·중학교 때 육지로 나간 선수들이죠. 제주에선 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제주 안에서 좋은 선수를 키우고 이들이 프로 무대에서 잘 성장해 다시 제주에서 지도자를 맡을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도내 야구부의 연계 육성은 물론 훈련 환경과 코칭 스태프 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제주에 온 이상 제주 야구가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그라운드에서 행복하게 꿈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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