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녹색은 생명이며 평화이자 젊음과 이상이 맞닿는 환희다. 녹색세대인 우리는 인류의 희망이며 세계를 더 푸르고 평화롭게 만들 미래의 주역이다." 2011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와 제주도교육청 공동 주최로 제주에서 열렸던 '전국 청소년 녹색캠프 참가자 일동'이 서귀포학생문화원 입구에 세운 '청소년 녹색문화 선언문' 빗돌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제주 체험학습을 계기로 녹색환경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겠다던 청소년들의 다짐이 눈앞에서 뭉개질 상황에 놓였다. 높다란 기념비 앞에 펼쳐진 녹색 잔디광장이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개설로 잘려 나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1965년 당시 건설부가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를 도시계획도로로 지정한 점을 들며 동홍동과 서홍동을 잇는 4.2㎞ 구간에 도로 폭 35m의 왕복 6차선을 내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계획 고시 후 50년이 지나 도로 개설을 추진하는 과정에 찬반이 엇갈렸고 지금도 논란이 이어지는 중이다. 서귀포시 1호 광장 일대 교통 혼잡을 해소할 대안이라며 시급히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한편에 서귀포학생문화원 등 4개 교육기관이 모인 곳을 관통한다며 도심 녹지 공간 파괴와 학생 안전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런 중에 도로 개설에 찬성해온 김광수 교육감이 지난 7월 취임 이후 제주도교육청이 제주도에 서귀포학생문화원 등 이설 부지를 요구해 양측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시설 이전 현실화 여부를 떠나 3만㎡가 넘는 서귀포학생문화원 구간의 도로 개설을 기정사실로 못 박고 있지만 의문점은 남는다.
1993년 2월 서귀포푸른학생의집으로 개관해 1996년 서귀포학생문화원으로 개칭했고 예술영재교실 증축, 대강당 수선, 석면 철거와 수리 공사, 놀멍쉬멍 잔디광장 조성 등 서귀포학생문화원이 30년 가까이 걸어온 길에 우회도로 계획을 의식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귀동에 있다가 1995년 지금의 위치로 신축 이전한 서귀포도서관에서는 어린이자료실, 독서활동실 증축 등이 이뤄졌다. 2009년 문을 연 서귀포외국문화학습관, 2012년 개원한 제주유아교육진흥원은 또 어떤가. 향후 도로가 뚫릴 부지였다면 거기에 지었을까. 결국 이 질문에 답해야 할 곳은 교통 흐름이나 도시 지형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때에 반세기 전의 도시계획을 내밀며 끝내 우회도로를 착공한 제주도다.
서귀포푸른학생의집 개관일에 교육감, 서귀포시의회 의장, 서귀포시교육장, 서귀포시 초·중등학교장 등이 참여한 기념식수들은 어느새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다. 그 곁에 아이들의 '푸른 꿈'을 염원하며 새긴 바윗돌이 서 있다. 오래된 풍경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었는데도 책임있는 자리의 누구 하나 안타까움이나 유감을 나타내는 이들이 없다. 시설 현대화를 거듭해온 건물을 두고 좁고 낡았다며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 더 크게 건립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반면 도서관 등은 그 지역에 꼭 필요하니 이전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백년지대계' 교육 시설에 경중이 있나. <진선희 행정사회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