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쓰게마씨](4)사투리시조집 낸 고정국씨

[제주어 쓰게마씨](4)사투리시조집 낸 고정국씨
연애할 때는 사투리를 안썼을까
  • 입력 : 2008. 02.14(목)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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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오래된 '폭낭'(팽나무) 아래서 만난 고정국 시인은 제주어 채록 연구가 한층 폭넓고 다채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승철기자

특정 지역·연령 언어 편중된 채록 연구 변화를
제주언어 사용 틀 서둘러 정하면 생명력 잃어



"언어는 '감저 마다리'(고구마를 담는 마대를 뜻하는 제주어)와 같다. '마다리'를 바로 세우려면 '감저'를 꽉 채워야 하듯, 정신이 올곧게 살아있으려면 그걸 담아낼 언어가 있어야 한다. 제주어도 마찬가지다."

시조시인 고정국씨(61)가 재미난 비유를 했다. 시인은 2004년 '제주사투리로 엮어낸 50년대 고향이야기'를 담은 '지만 울단 장쿨레기'란 시조집을 냈다. 단 6일만에 3백수에 이르는 시조를 썼다. 반세기전의 고향 위미리로 돌아가 그때의 사람들, 골목, 가축, 파도자락 따위를 신들린 듯 불러냈다.

시조와 만난 제주어는 곧 노래가 됐다. 제주어가 지닌 음악성에 시인도 깜짝 놀랐다.

'울단/ 장쿨레기/ 호륵호륵/ 장쿨레기//얄궂이/ 세경 바리멍/ 등치기루/ 거시당보민// 돌 우이/ 파들락파들락/ 꼴랑지만/ 들락키국.'('호륵호륵 장쿨레기'전문)

장쿨레기는 도마뱀을 뜻한다. 울단 장쿨레기는 울보아이를 보면서 저들끼리 놀려대며 쓰는 말이다.

4·3의 총소리로 시작된 시조집은 아이의 눈으로 섬 사람들의 삶이 촤르르 펼쳐진다. 제주말이 아니면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풍경들이 넘쳐난다. 그뿐인가. 어디론가 빨리 달려가는 모습이 떠오르는 '화릉화릉', 돌들이 솟아나는 길이 연상되는 '울랏쭉작'등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국보급 의태어와 의성어가 가슴에 안긴다.

앉는 모습이나 걷는 모습, 먹는 모습 등 하나의 동사에서 적게는 서너개, 많게는 열개 이상의 의태어가 있는 게 제주 언어의 특징이라는 시인. 누군가 의성어 의태어를 찬찬히 연구하고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즈막에 쓰이는 '제주어'란 말이 마뜩찮다. 한국어, 미국어, 일본어처럼 적어도 국가 단위의 기준에 적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제주어보다는 제주말, 제주언어, 제주사투리를 쓰는 게 알맞다고 주장한다. 제주어 채록 연구가 특정 지역이나 연령대의 언어에 쏠려있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제주 북부에서 '그영 허(ㅎ+아래아 ·)여부런?'(그렇게 해버렸어?)이라고 하는 데 비해 남부에서는 '기영 헤어벤?'이나 '겡헤벤?'이라고 말한다. 같은 뜻이라도 지역에 따라 말이 다르다. 제주 언어 사용의 틀을 서둘러 정해버리는 것은 자칫 지역 언어의 생명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그는 썩은 '낭토막(나무토막)'같은 말을 제주 사투리라고 골라쓰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했다. 부드럽고, 정겹고, 아리따운 제주말이 있는데도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소년소녀 시절에 썼던 사투리에도 귀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농사 짓고 물질할 때만이 아니라 연애하면서 썼던 말도 있지 않은가. 못다 캐낸 제주어는 아직도 많다.

"시조집을 냈을 때 일부 학자들이 제주어 표준사용 기준에 맞지 않다는 말을 하더라. 문득 '발에 신발을 맞추지 말고 신발에 발을 맞추라'는 왕년 신병훈련소가 떠올랐다. 제주의 지역마다 언어습관이 다른데, 무턱대고 학자들이 짜놓은 틀에 맞추라는 격이다. 너무 갇혀있는 게 아닌가. 제주사투리에 대한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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