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109)-한적한 섬에서 '인간어뢰’ 카이텐 훈련·발사

['고난의 역사현장'일제전적지를 가다](109)-한적한 섬에서 '인간어뢰’ 카이텐 훈련·발사
제주·일본 제2차 해외 비교취재 ③ 回天의 섬 오즈시마
  • 입력 : 2008. 07.17(목) 00:00
  • 이윤형 기자 yhlee@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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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텐 훈련 및 발진이 이뤄졌던 오즈시마 해안의 어뢰발사시험장 구조물. /사진=이승철기자

생명 담보한 반문명적인 자살특공병기
제주 모슬포 해안에도 카이텐기지 구축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일본이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특공병기 개발이다. 특공병기는 비행기나 혹은 어뢰 또는 선박을 개조해 폭탄을 싣고 함정에 직접 부딪치는 자살공격을 위한 필사의 무기다. 일본토 밖의 또 하나의 결전장으로 요새화됐던 제주도에도 이러한 특공병기를 위한 많은 진지가 구축됐다. 모슬포 송악산 해안을 비롯한 제주해안에 뚫어놓은 진지가 그것이다. 이 중 송악산 해안은 카이텐(回天) 기지로 만들어졌다. 카이텐의 중심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취재팀이 방문한 오즈시마(大津島)다.

오즈시마는 야마구치현(山口縣) 쥬난시(周南市) 도쿠야마(德山)항에서 30여분 남짓 항해하면 나타나는 한적한 섬이다. 일본에서는 카이텐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카이텐은 말 그대로 인간이 탑승한 채 미군 등 연합군 함정을 향해 돌진 자폭하는 어뢰형의 자살특공병기다. 오즈시마는 바로 이러한 카이텐 훈련 및 발사기지가 설치됐던 곳이다. 도항선 선착장에는 '회천의 섬'이라는 세로 간판이 서 있다.

▲콘크리트 벙커형으로 구축된 오즈시마 회천기지 탄약고(사진 왼쪽)와 어뢰발사시험장으로 연결된 터널 내부.

'인간어뢰'인 카이텐이 구체화 되기 시작한 것은 1943년부터. 일본 해군 장교(중위와 소위 2명)에 의해 고안됐다. 처음엔 탑승원이 반드시 죽는 필사의 특별공격용병기였기 때문에 일본군 수뇌부는 이 병기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점점 불리해지자 1944년 허가됐고, 같은 해 8월에 결정 채용됐다고 한다.

카이텐은 상·하로 움직이는 잠망경을 갖추고 잠항과 부상, 항로변경 및 변속이 가능했으며 앞부분에는 1.55톤의 TNT작약(폭탄을 파열시키는 화약)을 장착했다. 명중한다면 대형 함정까지도 순식간에 침몰시킬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즈시마에 훈련기지가 설치된 것은 1944년 9월1일. 해수면이 넓고 잔잔한 이 섬은 93식어뢰를 위한 시험장이 1937년에 만들어져 있었다. 때문에 93식어뢰를 개조한 카이텐은 기존 설비의 대부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카이텐은 처음 정박한 함정을 목표로 한 박지(泊地) 공격을 했으나, 후에는 항해중인 함대로 목표를 바꿔 해상공격이 감행됐다. 박지·해상 두 가지 작전은 잠수함 갑판에 카이텐을 탑재한 채 항해하면서 바다속에서 발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나중에는 본토결전에 대비해서 육상기지에서의 발진도 고안됐다.

현재 이 섬에는 기념관과 자료관, 어뢰발사시험장, 조정장과 어뢰발사시험장을 연결하는 터널, 위험물 저장고 등이 남아있다. 훈련병들이 오르내렸던 지옥의 계단도 볼 수 있다.

기념관 진입부에는 출격했다 사망한 탑승원 이름과 출신지가 새겨진 비가 세워져 있고, 카이텐 실물모형이 바다를 향해 돌격하듯 전시되고 있다. 내부에는 탑승원의 유서와 군복, 당시 사진을 비롯 각종 자료 1천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암반을 뚫고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마감한 터널 내부에는 당시의 카이텐 사진이 그대로 남아있다. 어뢰는 이곳을 통과해 어뢰발사시험장으로 향한다. 터널과 어뢰발사장터는 하나로 연결돼 있다.

섬 전체가 카이텐기지였던 오즈시마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각국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기념관 역시 평화를 표방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침략전쟁의 정당성과 야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일본이 모슬포 송악산 해안에까지 특공병기인 카이텐기지를 구축했다는 것은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방패막이로 삼아 본토결전에 대비했던 전쟁의도를 잘 보여준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아픔과 비극은 60여 년 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역사로, 우리의 일상과 가까이 있다.

/특별취재팀=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탐사 포커스]

회천(回天)이란?

실용화 된 회천1형은 93식 어뢰를 개조한 것이다. 전장은 14.75m, 직경 1m, 중량 8.3톤, 최고속력은 30노트로 93식산소(酸素)어뢰기관을 갖추고 있었다. 행동반경은 10노트일 때 78km로 가장 넓으나, 20노트일 때는 43km, 30노트일 때 23km로 줄어든다.

앞부분에는 1.55톤의 작약(炸藥)을 탑재했고, 기폭장치가 돼 있다. 잠수함에 어뢰정을 싣고 출격했다가 함정을 발견하면 위치 확인 등 정찰을 끝내고 회천 작전에 돌입한다.

회천에는 탑승원이 함정에 돌진한 후 탈출하는 해치가 있었으나, 나중에는 밖에서만 열수 있도록 개조됐다. 때문에 한 번 작전에 투입되면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특별취재팀=이윤형·표성준·이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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