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가시울타리 못넘은 추사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가시울타리 못넘은 추사
  • 입력 : 2008. 07.29(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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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무용단의 '세한연후'…8년여 유배 이미지 허약
한달만에 올린 무대라니


나이 55세에 제주로 유배된 추사 김정희.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제주에 머물렀다. 추사에게 제주는 어떤 곳이었나. '세한도'를 그리고 추사체를 완성한 각별한 섬이다.

제주도립무용단이 추사와 제주의 인연을 춤으로 풀어냈다. 지난 25~26일 이틀동안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세한연후'란 이름으로 정기공연을 열었다. 섬의 환경에서 키워낸 민속을 주로 춤에 담아온 도립무용단인지라, 역사속 인물을 끌어낸 이번 작품은 유달라보였다. 주최측의 적극적인 홍보 덕인지 공연장은 만원이었다.

매년 음력 6월 추사유배지에서 치러지는 탄신제를 떠올리는 춤사위로 막이 오른 공연은 1시간 남짓 이어졌다. 유배길, 초의선사와의 교유, 남달리 금실이 좋았던 부인 예안 이씨의 죽음, 세한도의 탄생이 차례로 펼쳐지면서 추사의 예술과 생애를 더듬었다. 거친 배를 타고 넘듯 파란만장했던 삶이 연상되는 탄신제, 당쟁에 휘말려 죽음의 고비를 넘는 장면 등 몇몇 군무가 인상에 남았다. 초의선사, 예안 이씨의 독무도 절절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추사를 맡은 무용수의 몸짓은 반복적인 느낌이었다. 가시울타리에 갇히는 유배, 부인의 병사, 제주 자연에 대한 감응, 세한도의 탄생 등 추사가 대목대목 등장했지만 감정의 변화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다.

추사를 모함하는 장면에 나와 매서운 몸짓을 펼친 이들은 남성무용수였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가뜩이나 남성무용수가 부족한 현실에서 일부 남성단원들이 보여준 둔중한 동작도 실망스러웠다.

추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극 차용했더라면 무대가 한층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유배객의 쓸쓸한 자태를 보여주는 초상화로 유명한 '완당선생 해천일립상'에 나오는 삿갓 쓰고 나막신 신은 추사의 모습, 그가 제주에서 발견한 사랑스러운 꽃인 수선화 같은 것 말이다. '세한도'역시 아쉽다. 무대뒤 그림자처럼 비치던 소나무는 처연한 유배인의 심경을 투영하기 보다 육중하게만 다가왔다.

준비기간이 부족했던 게 느껴졌다. 무용단을 운영하는 도문화진흥본부는 이번 공연이 기획된 게 지난 6월초라고 했다. 대본, 음악, 안무, 무대 디자인 등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발등에 불 떨어진'격으로 작품이 만들어졌다.

도립무용단은 1년에 단 두차례 정기공연을 벌인다. 연말쯤엔 다음해 공연 주제가 정해져야 한다. 그게 전문예술단이 품어야 할 자세다. 더욱이 이번 공연은 문예회관 개관 20주년 기념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무대위 언어로 도립무용단다운 위상을 보여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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