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 미술관 옆 문화거리 어찌할까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 미술관 옆 문화거리 어찌할까
  • 입력 : 2008. 08.05(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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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명명된 이중섭거리…서귀포 문화벨트 구상내놔
주민참여 광복로 기억해야


꽈배기빵을 비닐봉지에 담은 사내아이 둘이 장터 앞에 멈춰섰다. 헌 책들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이거, 얼마예요?" 5백원이라는 대답에 눈이 커졌다. 둘은 큰소리로 "마음의 양식부터 채워야겠다"며 책을 뒤적거렸다.

오후 2시. 어지간해선 바깥 나들이를 주저할 시간이었지만 그곳은 달랐다. 간이 천막 아래 오종종 모여있는 손수 구운 그릇, 목걸이, 엽서, 책, 음반 따위를 '만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2일 서귀포시 정방동 이중섭거리에 갤러리 하루의 '서귀포 예술벼룩시장'이 섰다. 도심의 쇠락한 어느 길은 그날 하루 반짝 윤이 났다.

총 길이 3백60m에 이르는 이중섭거리는 제주섬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문화의 거리일 것이다. 1996년 서귀포시 지명위원회가 이중섭거리라고 이름붙인 게 시작이었다. 이듬해 피란시절 머물던 이중섭거주지가 복원됐다. 훗날 이중섭전시관이 들어섰고 그것은 이중섭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며 커갔다.

이중섭미술관 옆 '서귀포관광극장'은 번화했던 이중섭거리의 과거를 말해주는 공간이다. 1960년대 제주를 방문했던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지휘봉을 잡았다는 곳. 서귀포 중심가였던 그 거리엔 지금 노래부르고 술마시는 오래된 간판이 즐비하다.

문화의 거리라고 하지만 이중섭미술관 주변 7,951㎡(2천4백평)에 이르는 이중섭문화촌을 제외하면 문화의 향기를 맡기 어렵다. 근래에 미술관 앞 횟집건물을 사들여 5층짜리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짓는 게 눈에 띌 뿐이다.

서귀포시가 이중섭거리에서 출발해 소암현중화기념관, 서복전시관을 잇는 1.5㎞ 구간의 문화벨트 구상을 내놓고 외부에 용역을 맡겼다. 10월쯤 '무엇을' 보다 '어떻게'에 집중해야 하는 용역 결과가 나온다.

문화의 거리 조성은 단박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전국의 여러 곳을 들여다봐도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다. 지자체의 일방적 주도로 진행하다가는 열에아홉 제 풀에 지치고 만다.

지난 3월 찾았던 부산 광복로 문화거리가 떠오른다. 광복로는 부산에서 오래된 지역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주민의 적극적 참여로 공간이 달라졌다. 간판을 바꾸더라도 규제보다는 주민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경관 조성 사업을 벌이면서 주민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결국 그 거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가꿔갈 사람들은 거기에 터잡은 사람들이 아닌가. 그곳에선 아름다운거리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문가와 지역주민이 함께 일본 답사를 다녀온 적도 있다.

이즈막 이중섭거리엔 예술벼룩시장이 샛별처럼 등장했고, 주말마다 서귀포시의 상설공연 락올래가 힘겹게 치러지고 있다. 이들이 '문화의 거리'란 이름을 찾기 위한 출발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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