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달달 외워야 하는 제주어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달달 외워야 하는 제주어
  • 입력 : 2009. 06.16(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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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대회 참가 아이들
지역어가 놓인 현실 읽혀
제주어 조례 방치할 건가


"이추룩 골(ㄱ+아래아·+ㄹ)암서야 지주어가 엇어지지 안헐거난 열심히 허쿠다."(이렇게 말하고 있어야 제주어가 없어지지 않을 테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말처럼 아이들은 열심이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9개팀이 열띤 경연을 벌였다. 동행한 어른들이 심사 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할 만큼 무대 안팎이 뜨거웠다.

지난 13일 제주대에서 열린 제주어말하기대회. 주최측의 말처럼, 표준어를 강요하고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다보니까 고향 말(제주어)은 점점 잊혀지고 있다. 제주어를 잘 알지 못하니 쓰지 않게 되는 게 당연하다.

몇차례 말한 적이 있지만 제주어말하기대회는 안간힘 같은 것이다. 아이들이 말하기대회를 통해서라도 제주어를 품어달라는. 아이들 뿐이겠는가. 대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이번 대회에 대학생부를 뒀는데 신청자가 한명도 없었다.

그래도 제주어말하기대회에 신청서를 낸 아이들은 기특하다. 예선에서 겨룬 초·중·고교생이 28팀이었으니 낙담하긴 이르다. 한줌 햇살같은 그 희망을 어떻게 보듬어가야 할까.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를 다시 꺼내봤다. 2년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된 지역어 조례다. 제3조 '제주특별도지사의 책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제주특별도지사는 사라져가는 제주어의 보전과 전승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여 도민들이 제주어를 이해하게 하는 한편, 제주어의 지속적인 유지와 보전 및 그 지원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선언에만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해 10월 첫 제주어주간을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제주도는 그동안 조례에 따라 설치된 제주어심의위원회를 딱 한번 가동하는 데 그쳤다. 제주어심의위원회는 제주어 기본계획 수립, 제주어 어문규범 제·개정, 제주어 보전과 활용을 위한 지원, 제주어 보급과 교육, 제주어 보전과 지원을 위한 연구 개발사업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다.

위원회가 소집되지 않은 것은 조례 제정 이후 제주어 보급과 교육, 제주어 보전과 활용을 위한 지원 사항 등과 관련해 별 움직임이 없었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인삿말로 건네는 '감수강'이나 '그래'라는 뜻을 지닌 '기여'는 자주 쓰거나 뜻을 알아도 '상방'(대청)은 모르는 게 2009년 제주어의 현실이다.

달라진 생활방식을 그 원인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도도한 변화의 물결에 전통문화가 사라진다고 세월탓만 하고 뒷짐지지 않는다. 문화재 지정 등을 통해 전승 보존 가치를 널리 알리고 교육 현장에 자주 노출시킨다.

제주어도 마찬가지다. 달달 외워서 구사하는 제주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스며들겠는가. 더욱이 빅뱅이나 동방신기가 아니라 처음 듣는 설화를 끄집어내 제주어로 이야기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제주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제주어 조례가 그 취지대로 실행된다면 제주어가 놓인 환경도 달라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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