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복사본 서른 점을 건 이유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복사본 서른 점을 건 이유
  • 입력 : 2009. 07.21(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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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미술관 기획 전시
원화 구입의 중요성 역설
미술관 운영 장기 계획을


입장객들이 꼬리를 물었다. 단출한 규모의 미술관이라 전시실이 금세 붐볐다. 지난 18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서귀포 여행길에 한번쯤 들러야 할 미술관으로 인기가 높다. 관람객 증가 추세가 매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곳이다.

이중섭이 피난시절 서귀포에 머문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서귀포시는 그와의 인연을 끈질기게 붙들었다. 이중섭이 살던 미술관 앞 초가를 복원했고 360m에 이르는 구간을 이중섭거리로 명명했다. 그리고 미술관을 지었다.

미술관에선 지금 '서귀포의 환상'전이 열리고 있다. 타이틀로 쓴 '서귀포의 환상'은 이중섭의 대표작중 하나다.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 서귀포'가 따스한 색감안에 그려졌다.

그런데 9월말까지 진행되는 이번 기획전에 나온 서른 점은 모두 진품이 아니다. 실물 복사본이다. '달과 까마귀', '황소', '흰소', '섶섬이 보이는 풍경', '꽃과 어린이', '그리운 제주도 풍경' 등 이중섭의 회화성이 빛나는 그림들이지만 아쉽게도 이중섭미술관 수장고엔 이들 작품이 없다.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전시다. 먼 걸음을 하고 서귀포로 달려온 '육지'의 관람객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게 이중섭 그림을 원껏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그중엔 은박지 그림 한 점을 마주해도 감격하는 사람이 있다지만 거개는 실망감을 안고 돌아간다. 실제 미술관 방명록에는 진품이 적어 아쉽다는 관람 후기를 남긴 이들이 보인다.

요즘말로 하면 '국민화가' 이중섭을 테마로 내건 미술관이지만 그같은 치명적 약점이 있다. 개관무렵인 2002년부터 이중섭 진품이 없다는 여론이 일었다. 서울의 유명 갤러리에서 기증한 원화 9점으로 버텨왔다.

그러다 올해 처음 작품 구입이 이루어졌다. 예산 10억원이 반영돼 얼마전 두 점을 샀다. '서귀포의 환상'전에 부친 미술관 큐레이터의 글처럼 이중섭 원화 작품의 확보는 이중섭미술관의 과제다. 결국 이번 기획전은 그 점을 역설하고 있다.

미술관의 장기적 운영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작품 수집 예산을 꾸준히 편성하는 게 우선이다. 지금처럼 미술관 운영위원회에 작품 구입 절차를 내맡길 게 아니라 작품수집추천위원회, 작품수집심의위원회 등을 별도로 구성해 투명한 매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러 이중섭 작품을 대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도 필요하다.

일본 NHK가 이중섭을 다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고, 국내의 한 감독은 영화 제작을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중섭에 대한 관심이 커가는 만큼 미술관의 콘텐츠를 내실있게 채우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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