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추울때면 추억속 음식인'보말국'과 '보말칼국수(사진)'가 떠오른다. /사진=이승철기자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반한 맛"누구든 같은 정성·맛 전해야"
입춘이 지났는데도 찬바람은 도무지 떠날 기미가 없는 듯 하다. 요즘처럼 추울때면 추억속 음식에는 늘 칼국수가 등장한다. '풀풀하게' 끓여낸 칼국수는 함께 넣는 재료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신할 수 있는 매력이 있을터. 해물을 넣으면 해물칼국수, 호박과 감자가 듬뿍 들어간 칼국수, 칼칼한 김치칼국수까지. 이뿐이 아니다.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말칼국수'는 제주를 찾는 손님들의 입맛에도 딱 맞는 음식 중 하나다.
바람많은 모슬포, 5일마다 장이 서는 오일장 한켠에 있는 '옥돔식당'은 이미 '보말칼국수'맛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상호는 '옥돔식당'이지만 주메뉴는 '보말'을 주재료로 한 요리다. 보말을 해초만 먹고 자라는 바다고동. 제주에서는 보말을 재료로 참기름에 달달볶다가 죽을 끓이기도 하고 미역을 넣어 국을 끓이기도 한다.
이곳의 주인장은 차옥자씨(62). 제주에 시집와서 옥돔 도소매업을 하다가 12년전부터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가던 16일도 장날이었다. 장날 손님맞이를 해야하니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울리지 맙서'라는 경고문구가 눈에 띈다. 빨리 달라고 재촉하면 정성이 떨어지고 그러면 음식맛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인장의 은근한 경고(?)다.
이곳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세계적 문호 르 클레지오도 찾아와 맛에 반하고 돌아갔다. 전직 대통령 가족도 다녀갔다. 하지만 차씨는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떤 손님이든 같은 정성과 맛을 드릴 뿐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 중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식당에서 만난 조찬상씨(57·청주시)는 "퇴직후 아내와 제주여행을 하고 있는데 입이 짧은 아내가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밥까지 시켜 싹싹 비벼 먹은 유일한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보말국
주인장이 내놓은 보말국 정식과 함께 나온 반찬은 정갈하기 이를데 없다. 콩나물, 김치, 시금치무침, 지역을 대표하는 '대정마농'장아찌, 마늘종 볶음 등이 먹음직 스럽게 나왔다. 주인장은 보말이 미역과 어우러져 걸쭉하게 우러난 국물을 전날 술자리를 했던 사진기자에게 해장에 좋다며 권했다. 보말칼국수는 푸짐한 양에 김가루와 유부가 솔솔 뿌려진 위에 매운 청양고추 다진 것을 올려 휘휘 저어 먹으면 된다. 쫄깃한 면발에 바다내음을 머금은 보말은 그야말로 환상궁합을 자랑한다.
이곳이 입소문이 나면서 힘든 점도 있다. "단골손님이나 관광객들이 다시 찾아와서 제가 몰라보면 섭섭해 합니다. 음식을 할때 옆에 와서 계속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손님들이 이곳까지 온 것은 저를 보기위해서가 아니잖아요. 제가 해주는 맛있고 정성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죠. 그러면 제가 해드리는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가는 것으로 만족해 주셨으면 합니다."
요즘에는 보말이 달려서 영업시간을 줄여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만큼 '보말칼국수'와 '보말국'이 제주만의 음식이 아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맛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칼국수를 끓이고 있는 차옥자씨.
이런 주인장 뒤에는 든든한 어머니 이정순 할머니(80)가 있다. 손칼국수를 반죽하고 써는 일은 어머니의 역할이다. 어머니는 반죽도 그때그때 써는 것도 바로바로 칼질을 한다. 이 할머니는 "몸이 건강해서 큰 딸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제주바다가 빚어낸 천혜의 선물 '보말'에 어머니의 손으로 만들어낸 쫄깃한 면발, 딸의 손맛과 정성으로 완성되는 그 맛이 바로 옥돔식당의 '보말칼국수'가 아닐까. 보말국 7000원, 보말칼국수 6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