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칼럼]소산 안흥찬 선생의 그림전을 보고

[강문규 칼럼]소산 안흥찬 선생의 그림전을 보고
  • 입력 : 2011. 07.19(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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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라산국립공원 관리권 문제로 온 매스컴이 들썩일 무렵 한라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에서는 소산(素山) 안흥찬 화백의 한라산 수묵화 초대전이 열렸다. '한라산 품에 안기어'라는 제목의 이 그림전은 세계자연유산 등재 4주년을 맞아 이를 의미 있게 만들려는 국립공원측의 노력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임에도 기꺼이 한라산 품안에서 전시회를 열겠다는 선생의 마음이 만들어낸 값진 전시회다. 제대로 된 전시실도 아닌 로비 등에서 그림들을 펼쳐놓고 있어 안쓰럽기도 했지만 전시실을 찾은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소산 선생은 개막 인사말에서 자신은 화가도 아니고, 그저 산이 좋아 평생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틈틈이 한라산의 모습을 그려 왔을 뿐이라고 했다. 사실 선생은 평생을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살아왔다. 등반 횟수가 2000회에 이를 정도로 평생을 한라산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러나 몸만 한라산을 오른 게 아니다. 붓과 함께 산의 능선과 계곡을 누볐다. 그래서 선생의 그림에서는 개미목에서 정상을 바라보거나 왕관릉의 기암괴석을 관조했던 날의 흔적들이 화선지에 가득히 펼쳐져 있다.

선생은 화가가 아니라고 했다. 그림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화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딱히 집어낼 수 없다. 하지만 선생은 지난 1979년 서귀포에서 가진 '한라산 묵화전'을 시작으로 모두 일곱 차례나 서울과 제주에서 개인전을 열었었다. 또한 한국서화작가협회전 한국화부문 최우수상, 아시아 평화통일미술대전 특선 등 크고 작은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첨언한다면 선생의 그림은 누구나 한 점 정도는 간직해 완상하고 싶어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선생은 몇년 전 건강이 악화돼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했다. 그러나 쾌유됐고, 그런 와중에 그의 아호를 붙인'소산산악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한번 이 산악관을 들렀었는데 이 곳에 전시된 등반장비와 기록, 관련 자료들은 제주는 물론 한국산악사의 소중한 유물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자료들을 버리지 않고 곶간 속에 모아두었을까. 그것은 곧 자신의 자취에 대한 자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맑고 순수한 날들의 기억, 한라산과 대화를 나누며 느꼈던 생각들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건강을 되찾았다고는 하나 다시 산을 오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도상(圖上)을 통해 산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마치 바둑의 고수들이 자신이 두었던 바둑 한 판의 흐름과 의미를 음미하며 복기하듯 선생도 마음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한라산의 풍경을 음미하며 그려내고 있다. 평생을 한라산과 더불어 살며 그 산이 간직하고 있는 진가를 그림으로 그려 온 선생의 일생은 아름답다. 닮고 싶은 원로들을 찾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 그래서 선생의 모습은 우리에게 더욱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소산 선생은 뵐 때마다 늘 숲에서 퍼지는 목향과 같은 향기가 풍겨온다. 한라산 선작지왓 일대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가롭게 걸어다니며 풀을 뜯는 노루와 같은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선생의 얼굴에는 백제의 와당(瓦堂)에서 본듯한 온화한 미소나 돌하르방의 해학적 눈웃음이 번지기도 한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알 수 없다. 고 양중해 시인은 청소년기에 한라산을 소재로 '한라산 다녀 온 날은 / 외할아버님 뵙고 온 듯/ 저절로 마음이 따스하네'라는 내용의 습작시를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평생을 틈만 나면 찾아 나섰던 한라산이 그런 마음, 그런 미소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강문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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