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성육아종질환을 앓고 있는 도내 환자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육아종질환 환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사진 위). 사진 아래 왼쪽-환자의 머리MRI. 사진 아래 오른쪽-가슴X선.
생후 6개월전 항문주위 농양
도내 환자수 전국서 가장 많아희귀난치성 극복 꾸준히 시도
# 8세 남자 아이가 의식 저하와 경련으로 병원을 찾았다. 3일전부터 고열과 두통이 있었고, 가래를 동반한 기침을 심하게 했다. 머리 MRI에서 여러 개의 농양(종기나 부스럼에 농(膿)이 있는 병증)이 발견됐고, 가슴 X선에서도 결핵을 의심하게 하는 폐렴이 발견됐다. 가래 배양 검사에서 곰팡이 균이 자라 뇌농양과 폐렴 등의 심한 감염의 원인인 곰팡이 균으로 밝혀졌다. 과거력 상에서 이 환자는 생후 6개월에 왼쪽 겨드랑이에 덩이가 생겨 인근 병원에서 비씨지(BCG) 접종 후 발생한 림프절염으로 진단받았다. 이 후에 자주 재발하는 항문 주위 농양으로 인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부위가 잘 아물지 않았다. 면역결핍증이 의심돼 큰 병원에서 특수 검사를 받았고, 2세 때 만성육아종질환으로 진단받았다.
▶만성육아종질환=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사람에게 감염되면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식세포라 불리는 면역 세포가 병원체를 잡고, 과산화수소와 같은 산소 유도체를 만들어 병원체를 죽이게 된다. 이러한 식세포와 산소 유도체의 면역 반응을 선천 면역이라고 한다. 만성육아종질환은 식세포의 기능과 산소 유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선천적인 유전적 결함이 생겨 세균 감염에 대한 선천 면역 기능이 떨어져 감염성 질환이 자주 걸리는 질환이다. 감염된 세균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할 경우 정상적인 면역 반응은 '육아종'이라고 하는 감염된 세균과 정상 조직과의 벽을 만들게 되는데, 이 육아종을 이용해 다른 조직으로의 감염의 전파를 막는다. 만성육아종질환에서는 감염된 세균을 제거하지 못하므로 정상보다 더 많은 육아종을 만들게 되고, 육아종 내에서도 세균의 감염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므로 만성적으로 육아종 형태로 감염의 전파를 막으려고 한다.
이 질환의 환자 대부분은 잦은 감염과 그에 따른 후유증 등으로 조기에 사망하며, 30세 이전에 환자의 50%가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증상=생후 6개월 이전에서 대부분 반복되는 항문 주위의 농양으로 병원을 찾는다. 생후 6개월 이전에는 정상적으로 항체 생성 능력이 미숙하고, 항문 주위는 세균 감염이 흔해 면역결핍증을 의심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항문 주위 농양은 항생제 투여나 수술적 절개를 하는데, 만성육아종질환인 경우에는 수술 부위의 상처가 잘 낫지 않고 항생제를 투여해도 농양이 반복된다.
생후 1개월에 접종하는 기본 예방접종인 BCG 접종 후에 접종 부위에 농양이 생기고, 접종 부위 근처에 림프절염이 잘 생긴다. BCG 접종 후 발생한 림프절염은 치료 없이 대부분 치유가 되나 만성육아종질환은 림프절염이 지속되고, 림프절이 저절로 터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에도 상처가 잘 낫지 않아서 대부분 결핵으로 오인해 항결핵제를 투여하는 사례가 많다.
생후 6개월 이전부터 폐, 림프절, 피부, 간, 뼈, 연부 조직, 위장관 등에서 감염 증상이 흔하다. 이러한 감염 증상은 통상적인 치료에 잘 낫지 않아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 폐렴은 가슴 X선 사진에서 결핵과 유사한 소견을 보이기 때문에 항결핵제를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항결핵제를 투여해도 폐렴이 좋아지지 않고 더 악화되는 수가 많다.
감염의 원인균으로는 감염 부위에 화농을 잘 일으키는 포도알균이 가장 흔하며, 농이 푸른색을 띠는 녹농균, 대장균 등의 세균성 감염이 많다. 칸디다와 같은 곰팡이 균의 감염과 소아 환자에서 폐렴을 잘 일으키는 마이코플라즈마 감염도 흔하다.
감염 부위가 확인되지 않고 장기간 고열이 있는 불명열이나 증상의 악화가 빠르게 진행돼 치명적인 패혈증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유병률=만성육아종질환은 연구자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구 100만명당 3~4명 정도의 유병률을 가진 드문 질환이다. 국내에서는 1999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33명의 환자가 보고됐고, 2006년에 대한소아임상면역학회 주관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된 조사에서 44명의 환자가 보고돼 인구 100만명당 약 1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9년 자료에서 전체 33명의 환자 중에서 7명이 제주 지역의 환자들이었고, 2006년 조사에서도 전체 44명의 환자 중에서 11명이 제주 지역의 환자들로 밝혀져 만성육아종질환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 지역에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만성육아종질환의 치료는 병원체 감염에 대한 예방과 적극적인 항균 치료가 우선 된다. 예방으로는 기본 예방접종과 피부 상처에 대한 즉각적인 항균적 처치가 중요하며, 항문과 치아에 대한 위생 상태 유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BCG와 홍역-볼거리-풍진(MMR) 예방접종은 생균을 이용한 예방접종이므로 하지 않아야 한다. 예방적인 항생제 요법과 항진균제의 투약도 효과적으로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 인터페론 감마 주사도 예방적으로 투여하면 항생제 투여를 줄일 수 있고, 심한 감염 증상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최근 완치가 가능한 치료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골수 이식과 조혈모세포 이식은 비교적 부작용이 적고 안전성이 확보돼 외국에서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적합한 골수 기증자를 구하기가 힘들고, 치료비용이 높아 시도되지 않았다.
/조상윤기자 sycho@ihalla.com
[ Q & A ]
1. 다른 아이에 비해 감기를 자주 앓는데 면역 기능에 이상이 있는 건가?
=감기를 자주 앓는다고 면역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생 후 6개월부터 24개월까지는 어른에 비해 면역 기능이 미숙,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을 자주 앓게 되며, 4세 정도가 돼야 어른과 비슷한 수준으로 면역 기능이 발달한다. 그러나 흔히 잘 걸리지 않는 질병이나 심각한 수준의 감염병이 있는 경우에는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2. 모유 수유를 하면 병에 잘 걸리지 않나?
=모유에는 병원체 감염에 대한 면역 기능을 하는 항체가 풍부하다. 그러므로 모유 수유를 하는 소아들은 특히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장기간 모유만 수유하면 영양 불균형, 모유 수유에 의한 빈혈, 과도한 정신적 집착 등이 생길 수 있다.
3. 어려서 항생제를 많이 복용하면 면역 기능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나?
=장에는 정상적으로 세균들이 있는데 이를 정상세균군이라 한다. 정상세균군은 면역 기능을 자극해 면역 능력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항생제를 복용하면 병원체와 함께 정상세균군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무분별한 항생제의 사용은 병원체를 없애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으나 정상세균군의 면역 기능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의가 판단하여 세균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전문의 의견/신경수(소아과)] "체계적 조사 선행돼야"
만성육아종질환은 반복적이고, 치명적인 세균과 진균의 감염을 특징으로 하는 유전성 면역결핍 질환이다.
인구 100만 명당 3~4명 정도의 유병률을 가진 드문 질환이다. 하지만 제주지역은 인구 100만명당 약 20명으로 유병률이 매우 높다.
만성육아종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유전 분석을 통해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찾아야 하며, 만성육아종질환 환자들의 유전적인 결함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제주 지역의 만성육아종질환 환자들의 유전적 결함은 모두 동일하며, 이론적으로 가족 내 환자가 발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환자가 가족 내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만성육아종질환이 치명적인 유전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제주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만성육아종질환은 환자 수는 적지만 치명적인 유전성 면역 결핍증으로 조기 진단과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며, 유전 분석을 통해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보인자를 찾아내 유전 상담과 효과적인 산전 진단으로 병의 발생을 예방하는 방법도 병의 조기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제주 지역의 만성육아종질환의 치료와 예방 대책 수립을 위해 제주도 차원의 만성육아종질환 보인자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만성육아종질환 유전자 변이에 대한 산전 진단과 신생아 검사와 같은 보건 정책의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치명적이고 치유가 힘든 감염이 동반된 만성육아종질환의 치료에 조혈모세포를 이용한 유전자치료가 시도되고 있으나, 만성육아종질환은 유전 변이가 다양해 일부 유전형에만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제주 지역에서는 만성육아종질환자의 유전 변이가 모두 동일해 동일한 방법으로 유전자 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유전자 치료가 제주 지역 특화 의료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연구 지원과 특화 센터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