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칼럼]600년을 함께 했던 성읍 팽나무

[강문규 칼럼]600년을 함께 했던 성읍 팽나무
  • 입력 : 2011. 08.09(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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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무이파'가 당초 예상했던 진로를 벗어나며 지난 7일 제주 전역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 날 새벽 성읍리에 사는 한 후배가 다급한 목소리로 "천연기념물(제161호)인 팽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고, 일관헌을 덮쳤다"고 알려왔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20분쯤 되는 시각이었다. 먼저 후배기자에게 취재토록 연락한 뒤 곧바로 성읍민속마을로 향했다. 라디오를 켜니 제주에 태풍경보가 발령되었으니 주의를 하라는 뉴스가 반복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여러 생각이 강풍에 꺾여 도로 위를 나뒹구는 나뭇가지들처럼 스쳐 지나갔다. 성읍민속마을에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최고령목이라고 해서 산림청에서'뉴 밀레니엄나무'로 선정한 바 있다. 정의현 객사 경내에 있다. 북서쪽에는 동헌인 일관헌이 있고, 10여 그루의 고목들이 관아를 호위하듯 들어서 있다.

이번에 생을 마감한 팽나무는 수령 600년을 헤아린다. 이 마을에 정의현이 들어선 게 1423년이니 이 때 심은 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담수계(淡水契)가 펴낸 증보탐라지(增補耽羅誌)에는 제주의 대표적인 숲, 즉 10개소의 사수(砂藪) 가운데 '대수(大藪)는 표선면 성읍리에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렇다면 정의현을 성읍으로 옮길 때 풍수지리적으로 적합한 현재의 터를 정의현 관아터로 삼고 여기에서 베어낸 목재는 관아 건축자재로 조달했을 지도 모른다. 정의현의 역사보다도 훨씬 오래된 고목들이 주변에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고목동산'이라고 부른다.

팽나무가 쓰러진 현장은 처참했다. 기다리고 있던 후배(김영관)는 7시경 큰 나뭇가지가 꺾였는데 잠시 후 밑둥 전체가 서쪽으로 쓰러지며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7호)인 일관헌을 덮쳤다고 한다. 이 나무도 수십년 전부터 노환을 앓아 왔다. 문화재당국이 30여년 전부터 외과수술을 한다며 갈라진 나무 틈새에 시멘트로 접합하는 등 나름대로 관리해 왔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그리고 태풍이 불어닥치며 오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제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 팽나무는 정의현의 설치와 폐지, 그리고 이 마을의 역사와 희로애락을 지켜보았던 거목이다. 마을 사람들은 여름철이면 이곳에 모여 가무음곡을 즐겼다. 필자도 때로는 어르신이나 선배들로 부터 정의현의 역사를 듣거나 성읍에서만 불려졌던 민요들을 배웠다. 가끔 팽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면 이 마을에서 7대를 살아간 아버지, 할아버지 등 선조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곱씹어 보기도 했다. 거목인 팽나무는 말이 없었지만 그 우람한 그늘아래서 너무나 많은 생각과 느낌, 그리고 삶의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팽나무가 일관헌을 덮친 것을 보며 또 다른 생각이 스쳐지났다. 기록상으로 보면 일관헌(日觀軒)은 지금의 남향이 아닌 동향 건물이다. 일관헌이라는 뜻도 동쪽에 뜨는 해를 바라보는 집이라는 의미다. 이는 최근 이 일대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발굴을 통해서도 밝혀졌다. 건물도 목재가 아닌 시멘트구조로 지어졌음은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래서 정의현의 역사를 지켜보았던 팽나무는 마지막으로 잘못 지어진 일관헌을 덮쳐 무너뜨리며 관아를 바로 세울 것을 일깨우려 했는 지도 모른다. 후계목을 심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야 후손들도 그런 역사와 문화를 대대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선인들은 아끼던 바늘 하나를 잃어도 그 슬픔에 '조침문(弔針文)'을 남기며 애도했다. 하물며 600년을 마을의 흥망성쇄를 지켜보다 이제 영원히 떠나는 팽나무를 보내며 일말의 회한이 왜 없겠는가. 그날 마을 이장은 소주를 팽나무 가지와 그루터기에 뿌리며 마을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을 대신했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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