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그 바람의 울림'을 주제로 지난 2일 개막한 제주국제관악제가 20일 제주아트센터 초청연주회를 끝으로 폐막됐다. 관악제 기간 제주섬 곳곳에는 금빛 관악의 선율이 바람을 타고 흘렀다. 관악제에 참가한 국내·외 연주자와 관객들은 한데 어우러져 한 여름 밤의 추억을 안고 돌아갔다. 필자도 두번 공연장을 찾았다. 딱딱한 돌의자에 앉아 장시간 연주를 듣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해변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있어 즐거웠다. 제주국제관악제는 올해 16회째를 보냈다. 척박한 문화예술의 텃밭에서도 해마다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고 있으니 제주인으로서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주변에 음악하는 선배들이 있어 종종 제주관악의 발자취를 듣곤 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인 길버트소령이 오현고등학교 밴드부를 창설(創設)한 주역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후 오현밴드부는 전국관악제에서 명성을 떨친 뒤 개천예술제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도민의 커다란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번 관악제에서 감동의 무대를 선사한 '클라리넷 소녀'도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였던 제주에서 관악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제주관악의 역사는 좀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장인 현화진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성읍초등학교(당시는 정의보통학교)에 밴드부가 있었다고 말한다. 일본으로 떠난 이 마을 출신 중 오사카에 살고 있던 교포들이 1940년대 초 성금을 모아 악기들을 사서 보내왔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 최초의 12인조 교악대가 탄생했다. 그런데 4·3사건에 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대정에 육군 제1훈련소가 들어서면서 예악대(藝樂隊)가 창설(초대 악장은 박시춘 작곡가)되었다. 당시 성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현화진 선생의 회고담을 들어보자. "전쟁이 나고 계엄령이 내려졌는데 어느날 군인들이 트럭을 몰고 학교로 찾아 왔다. 그들은 '훈련소에 예악대를 만들려고 하니 학교의 악기들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차용증을 받고 빌려 주었는데 그 후 감감무소식이 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제1훈련소의 군악대가 성읍교악대의 악기를 주축으로 창설된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제주도지'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다. 제주관악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바르게 기록하고, 재조명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올해 제주국제관악제는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 야곱 드 한이 작곡한 '제주의 여신'이 초연돼 그 의미를 크게 높였다. 이전에도 독일 작곡가인 만프레드 슈나이더가 제주민요의 음계를 반영한 작품을 무대에서 선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제주의 곡'은 거의 귀에 들려오지 않아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가져왔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말은, 간혹 제주의 문화예술축제를 지켜 볼 때 실감하게 된다. 예산 130억원 정도를 썼다는 '제주섬문화축제'도 그랬다. 제주의 작품은 본 무대에 서지 못하고 주변만 떠돌았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축제 기획자들의 관점(觀點)과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제주적인 것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려는 열정보다 자꾸만 뒤로 물러나려는 '변방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다른 지역이나 외국의 연주단을 초청해 문화예술의 수준과 경향을 보여주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제주의 그것이 설 땅이 없어서는 안된다. 결국 제주에서 대규모 문화축제를 개최하는 가장 큰 뜻은 끝없이 제주를 중심으로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그것은 봉황을 보기 위해 벽오동나무를 심는 뜻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초연된 '제주의 여신'은 더욱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