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규 칼럼]진정한 '제주의 영웅들'

[강문규 칼럼]진정한 '제주의 영웅들'
  • 입력 : 2011. 10.11(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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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인 1세대 11명이 지난 5일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고향 제주를 방문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은 고령의 나이로 고향 땅을 밟았다. 일부는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며 관광길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은 귀도 먹고 몸이 아파 이번 방문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어느 분의 회한(悔恨)어린 말씀을 접하며 문득 한 귀절이 떠올랐다. 그들은 진정한 '제주의 영웅들'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일본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 오사카에 살고 계셨던 백부님 가족이 때때로 옷 소포를 보내왔다. 사촌들이 입던 옷이어서 새 옷은 아니지만 그걸 입고 나가면 주위가 훤했다. 당시만 해도 300여호 정도 되는 고향마을은 한 집 건너 재일동포를 친족으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어릴 적만해도 재일동포들은 도깨비 돈방망이를 가진 이들로 여겨졌다. 고향에는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마을출신 동포들이 방문했는데, 그들은 올 때마다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마을 소식을 알리기 위한 스피커와 앰프시설에서 도로포장· 전기·전화·수도사업비를 비롯하여 감귤묘목 보내기, 학교를 위한 성금품, 심지어 마을의 정기적인 수입을 위해 밭을 사고 감귤묘목을 보내어 아예 마을과수원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고향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큼직한 선물 보따리를 안고 왔다. 이런 일은 특정마을만이 아니라 제주섬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공직과 언론에 몸담으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는 제주도민들이 엄청나게 많고, 그들이 고향발전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기여했는 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애향(愛鄕)의 자취를 하루속히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에 윗분들에게 건의해서 '애향의 보람'이라는 작은 자료집을 펴내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도깨비 돈방망이를 가진 분들은 더 더욱 아니었다. 가까운 친족의 초청으로 일본을 다녀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재일동포들의 삶이 결코 여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일본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며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참으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모으면 고향으로 아낌 없이 부치고 있었다. 필자는 1990년대초 일본 취재를 갔을 때 처음 백부님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 큰 터전도 아닌 곳에 집을 짓고 가내수공업을 하며 살고 계셨다. 그런데 고향을 방문 할 때마다 선물을 들고 오셨다. 이처럼 제주의 가족을 지탱케 해 주고, 제주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애향의 원천(源泉)인 삶의 현장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새롭다.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하면 큰 가지를 뻗으며 넓은 그늘을, 바람이 불 때는 그것을 온 몸으로 막기도 한다. 제주의 역사에 재일동포들처럼 고향발전에 집단적으로, 그리고 수십년간 헌신적으로 기여했던 사례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어느 특정인이나 마을이 아니라 섬 전역에 발전의 초석을 놓고 애향의 정신을 끊임 없이 실천한 사례를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제주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영웅들이다. 그들은 이제 쇠잔한 몸으로 고향을 찾고 있다. 그들을 초대한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영웅의 귀환'은 이것으로 끝이어서는 안된다. 아직도 일본에는 숱한 영웅들이 남아 있다. 그들을 하루속히 불러들여 그들이 이룩한 고향의 모습을 보여주며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제주와 재일동포사회가 만드는 불후의 명작-제주인들이 엮어내는 애향의 스토리-이 감동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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