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까지 나와 대박난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접하게 된 건 오래 전 일이다. 양계장 안에 갇혀 알만 낳던 암탉 '잎싹'이 마당으로 나가 살면서 알을 품기를 꿈꾼다. 몇날 며칠을 굶어 폐계 흉내를 내다가 드디어 폐계 웅덩이에 버려져 마당으로 나오고, 마당을 넘어서 세상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줄거리를 가진 황선미 작가의 어린이 동화책은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서 많은 국민들이 접했을 것이다.
주인공 잎싹이 알을 품으려는 간절한 소망과 그 꿈을 향해 가는 고단한 여정! 따뜻한 모성애가 가슴을 적셔왔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는 그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려함이 더 돋보였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주인공 뒤편에 깔렸던 양계장의 닭들과 마당의 식구들은 잎싹처럼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단 한번의 질문이나 의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귀울일 여유없이 수많은 경쟁 질서 속에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한진중공업 해고투쟁에 맞서 309일 동안이나 고공투쟁을 한 소금꽃 김진숙 여성투사가 아니었다면 비정규직의 문제가 당연한 세상의 이치인 것 마냥 여겼을 것이고, 현대 자동차 정규직 성희롱사건의 여성노동자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싸우지 않았다면 직장내 성희롱 불감증을 가진 수많은 사건을 '그 정도 쯤이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강정 해군기지에도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국책사업이라고 무조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통념을 깨뜨리며 전국적 세계적으로 이슈화하는데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는 보름 남짓 앞두고 있다. 동화책 속 주인공과 같은 용감한 여성들이 세상의 관심을 모아내고 있음에도 현실 정치는 여성들에게 확 달라짐을 느끼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요 정당 대표들이 모두 여성들이 되는 이례적인 상황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지역구 공천 30% 이상 여성할당제 쟁취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자체가 '진보'다 '개혁'이다 외쳐보았지만 쇄신은 안보이고 여성은 없었다.
정책과 제도를 입안하는 정치영역에서 여성들은 지나치게 과소 대표되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이 정치적으로 15%의 대표성 밖에 갖지 못한다는 것은 지나친 불균형 상태임을 입증한다. 그래서 여성정치인의 자질논의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정치현실에서는 수적 증가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번 4·11 총선의 공천현황은 실망스럽다. 제주지역 총선에도 이슈가 되는 여성의제는 왜 안보이는지….
양육과 출산위주의 여성정책공약이 조금 더 확대돼서 여성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구체적이고 넓은 정책이 마련됐으면 한다. 또한 출산위주의 여성정책을 여성건강을 위한 보장정책으로 나아가는 한걸음 앞선 공약을 살피고 지적해줄 필요가 있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도 바꿀 수 있다.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좀 더 나은 복지를 부른다. 시혜가 아닌 사회 개혁, 그 중심에 여성들이 서야 한다. 여성유권자를 넘어서 여성후보로서 용감하게 뛰어드는 마당을 나오는 암탉들이 준비하고 만들어 가봤으면 한다. 정치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 아닌 일상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은화 前 서귀포여성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