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6)신들의 만찬

[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6)신들의 만찬
1만 8천 신들의 만찬메뉴는 제주 대표하는 서민 음식
  • 입력 : 2012. 04.17(화)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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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 2월 제주 전역서 굿 열려
입춘·당·영등굿 외에 마을제까지
전복·옥돔 등 신선 식재료 총집합

제주는 1만 8000 신들의 고장이다.

해가 바뀌는 음력 1월과 2월에는 제주 전역에서 가족의 무사안녕과 풍어·풍농 등을 기원하는 굿이 열린다.

절기상 그 서막을 알리는 것이 '입춘굿'이다.

제주의 전통 이사철인 '신구간'이 끝날 무렵 심방이 하늘로 올라가 자리를 비웠던 신들을 입춘굿을 통해 불러들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입춘굿이다.

탐라국 시대에는 왕부터 백성들까지, 조선시대는 최고 관리인 목사와 서민들이 한데 모여 풍농을 기원했다. 미신 타파를 외쳤던 조선시대에도 입춘굿만은 행해졌던 기록이 남아 있던 것으로 보아 농사의 성패가 나라 살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많은 신들이 제주를 찾은만큼 이들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은 제주에서 생산되는 최고의 식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입춘굿이 끝나고 나면 소 한 마리를 잡아 온 백성이 나눠먹었다고 한다. 최근에 행해지는 입춘굿에서 '입춘국수'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새철이 드는 날 입춘국수를 먹어야 집안도 평안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길게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맞물려 열리는 것이 마을제이다.

제주의 마을제는 여성들이 주관하는 무교식 '당굿'과 남성이 주관하는 유교식 '포제'로 나뉜다. 당굿은 제주의 중산간 마을에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상태이다. 음력 1월 13일에는 송당리마을제(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5호)가, 이어 다음날에는 와흘리마을제가 열린다.

당굿을 찾은 여성들 대부분이 삶은 계란, 돌레떡, 각종 야채, 과일, 생선(솔라니), 밥 등 준비한 음식을 제단에 올리고, 본향 당신에게 '아무개 집안에 왔다'고 아뢰고 식구들의 신을 받는 '예명올림(열명)'을 하고, 집안에 아픈 환자가 있을 때 집안의 액을 막고, 마을의 연유를 닦고 마을의 도액을 막는 일도 본향당신을 청하여 기원한다.

▲닭 칼국수 제작과정. /사진=김명선기자

송당리의 경우 수년전부터 (꿩)메밀칼국수를 당굿 전날 마을의 부녀회원들이 준비한 뒤 굿판을 찾은 손님과 마을주민들에게 대접하고 있다.

하지만 메밀칼국수의 육수를 만드는 재료가 되고 고명으로도 쓰이는 꿩의 가격이 오르면서 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안복순(56) 송당리부녀회장은 "몇년전부터 마을제를 찾는 고향사람과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큰 일이 있을 때 즐겨 먹던 메밀칼국수를 만들고 있다"며 "닭 뼈를 20시간 넘게 고와서 닭육수를 만드는데 예전방식대로 꿩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비용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와흘 당굿에서는 이 마을 아낙들이 준비한 국수를 맛볼 수 있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는 칠머리당영등송제에는 해녀들이 자신은 물론 심방의 점심을 준비하는데 해삼, 문어, 미역, 생선 등으로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사진=김명선 기자

제주에서 음력 2월은 서북계절풍을 몰고 오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오는 달', '영등이 드는 달'이라고 한다. 이때 부는 바람을 '영등바람'이라고 하는데 이 시기 마을의 신당에서 벌이는 굿을 영등굿이라고 한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1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로 들어와 제주 온 섬을 돌아다니며 씨를 뿌리고, 15일경 우도로 나간다는 바람의 신이자 풍농의 신이다.

이 기간 도내 전역에서 영등굿이 행해진다. 그 대표격이 1일에 제주시 수협공판장에서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환영제와 14일에 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 에서 행해지는 영등송별제(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이다.

▲서귀포시 온평리 본향당에서 열린 영등굿의 제단에는 제주 전통 메밀돌레떡과 솔라니(옥돔) 등의 음식이 올려졌다. 본향당을 찾은 해녀들이 풍어·풍농,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칠머리당영등송별제(음력 2월 14일)는 신위를 기준을 왼쪽에는 해녀들이, 오른쪽으로는 어선·화물선·상선 등의 선장이나 선주 부인들이 갖가지 산해진미를 준비해 올린다.

해녀들은 이젠 보기조차 힘든 어른 손 크기만한 전복에서부터 문어 한마리를 통째로 상에 올리기도 하고, 어부의 부인들은 자신의 남편이 주로 잡는 황돔, 조기, 한치, 옥돔 등의 생선을 상에 올린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상에 올려 신들의 오감을 즐겁게 해 풍어·풍농,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장인 김윤수 심방은 "예전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서민들이 즐겨먹던 것들이 상에 주로 올라왔다"면서 "해녀들이 준비하는 음식은 많은 변화는 없지만 어로기술의 발달로 선주들의 상에는 먼 바다에 나가야만 잡을 수 있는 진귀한 생선들이 올라오는게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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