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월, 특히 제주의 4월은 유난히 시끌벅적했다. 도내외의 많은 이슈들이 걸린 총선이 있었고 세월이 가도 아물지 않는 제주의 환부인 4·3사건에 대한 추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틀 전, 4월 1일에는 백호기 청소년축구대회 결승전이 열렸다. 대회기간 동안에는 제주만의 자랑거리인 바디섹션 응원전이 펼쳐졌다. 총선과 4·3사건은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바디섹션응원은 정치적 논란이 없는, 그저 매해 찾아오는 제주의 즐거운 이벤트일 뿐이다. 그러나 총선, 4·3사건, 바디섹션이라는 세 점들을 '이데올로기'라는 선분으로 연결해보면 이 섬을 오래도록 가두고 있는 견고한 삼각형이 보이게 된다.
4·3사건은 광신적 이데올로기가 낳은 사건이었다. 남로당 대 경찰, 서북청년단으로 이루어진 토벌대의 이데올로기 전쟁에 아무런 죄도 없는 제주도민 3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희생자들의 유족들 또한 빨갱이 딱지가 붙어 불공정한 연좌제를 온 생애 동안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피해보상은 이루어졌는가. 이 섬에 수많은 희생을 부추긴 우익단체의 회원들은 오히려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사실, 그들 각자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들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으로서 4·3사건과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이데올로기 뒤에 숨을 때, 개인의 책임은 사라진다. 대신에 그 자신만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였고 그 때문에 무고한 피를 수없이 봐야만 했던 제주에서 바디섹션 응원전이 하나의 전통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바디섹션에서 각각의 참가자는 '학교'라는 작지만 기초적인 이데올로기가 목표로 하는 이미지(골과 승리, 학교의 상징물)의 한 부분이 된다. 개인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응원에의 욕구는 미리 계획되었고 강압적인 이미지에 가려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체험했던 바디섹션연습에서, 주도적인 학생회 임원들이나 선배들의 명령에 참가자들은 무조건 '악!'이라고 대답해야 했다. 군대에서나 이루어질법한 이러한 발화법은 민주주의에서의 발화법과 정반대에 놓여있다. 개인의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서로 섞이는, 그 혼란의 과정을 거치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아니던가. 바디섹션연습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해도 참가자들은 단지 '악!'하며 대답할 수밖에 없다. 참가자들에겐 호소할 곳 또한 없다.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어야 할 학교가 이미 암묵적으로 학생회 임원들과 선배들에게 '공권력'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합법성을 띨 수밖에 없다.
제주의 미래를 이끌어갈 제주의 학생들은 바디섹션을 통해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배우기도 전에 '복종'부터 배운다. 부모세대가 그랬고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취 되었다는 지금도 그렇다. 지금 제주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정치적 쟁점들이 복종부터 가르치는 제주의 교육환경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뉴세븐원더스재단에 의문을 품지 말라는 도청과, 강정해군기지는 꼭 필요한 일이니 주민들은 더 이상 저항하지 말라는 국가 앞에서 우리는 총선을 통해 우리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했는가. 괸당, 학교 등의 이데올로기에 다시 '악!'하고 복종하지는 않았는가. <양은석 서울예대 문학창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