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삼독(三毒)-탐진치(貪瞋痴)

[월요논단]삼독(三毒)-탐진치(貪瞋痴)
  • 입력 : 2012. 05.28(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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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계 지도자들이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얼마 전 봉축법어를 발표했다. ‘부처님 오심은 온 우주의 생명에 자유, 평등, 행복이라는 희망을 주기 위함이요, 일체 생명이 참 나를 찾아 더불어 즐겁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화와 갈등은 탐진치(貪瞋痴)가 그 원인이다. 이를 떨쳐버리고 내 마음에 본래 갖춰져 있는 반야(般若)의 밝은 지혜를 회복하려면 인인개개(人人箇箇)가 참 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한데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나라 불교계가 아수라장이 됐다. 부처님이 무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 삼독(三毒)인 탐진치를 끊어내지 못한 까닭이다. 탐은 탐하는 마음, 진은 성내는 마음, 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일컫는다. 얼마 전 승려들이 도박판을 벌이고, 파벌싸움을 하고, 룸살롱을 출입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삼독에 해당된다. 도박은 승속을 떠나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부도덕한 일이다. 더구나 일반인 보다 막중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스님들로서는 어떤 연유로든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스스로 득도했다고 주장하면서 무애(無礙)의 경지에 들어간 듯 음주, 도박 등을 거리낌 없이 하는 승려들이 존재한다. 바로 수행자의 본분을 망각한 어리석음일 따름이다.

 불교에서는 승려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네 가지 중요한 계율이 있는데 그것을 사바라이(四波羅夷)라고 한다. 즉, 살생, 도둑질, 음행(淫行), 깨달음을 얻었다고 거짓말하는 것이며, 이 계율을 범하면 승려의 자격을 잃게 된다. 문제는 극히 드물지만 실제로 이런 승려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극소수의 비행승려가 전체 조계종단을 욕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극소수의 비행승려들로 인해 성철스님, 법정스님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역사를 욕되게 하도록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과 더불어 치열한 수행을 하고, 겹겹이 기워 입은 누더기 장삼 한 벌의 소탈한 생활로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성철스님이 입적한 지 19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대중에겐 쉽고 친근한 우리말 법어로 가르침을 주었고, 제자들에겐 철저한 구도정신과 청빈한 삶,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통해 오직 한 길로 수행할 것을 강조했었다. 그분이 살아계셨다면 이 세태에 대해 과연 무엇이라 했을까.

 단순한 삶과 투철한 자기 절제가 담긴 법정스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스님의 저서 중 ‘산에는 꽃이 피네’에 이런 글이 있다.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은 보지 말고, 듣지 않아도 좋을 것은 듣지 말고, 읽지 않아도 좋을 것은 읽지 말며, 먹지 않아도 좋을 음식은 먹지 않아야 한다.’ 아주 쉬운 내용이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우리 모두가 곱씹어 봐야 할 문구이다.

 ‘목지절야필통두(木之折也必通蠹)...’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인 한비는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 벌레를 통해서이다.’ 라고 하였는데, 모든 일에는 조짐(兆朕)이 있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어떤 일이든 징조를 보이다가 결국은 결정적일 때 한 방에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벌레 먹은 나무일지라도 강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당장에 부러지진 않지만 강한 바람에도 이겨낼 수 있도록 빨리 조치를 취해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정치계나 우리 사회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인 듯하다. <김천희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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