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광장]이제 그만, 시뮬라크르

[한라광장]이제 그만, 시뮬라크르
  • 입력 : 2012. 08.14(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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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늘 시외버스를 타려 노력한다. 제주시내에서 태어나 여태껏 제주시내에서 자란 나로서는 시외버스를 타는 일이란 관광 그 자체다. 탁 트인 초원, 빽빽한 숲길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은 섬 안에 어쩜 이리 다양한 풍경들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있을까, 흐뭇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조용한 즐거움은 시외의 간선도로를 따라 티눈처럼 제주의 속살에 박힌 테마파크들에 의해 방해받기 일쑤다. 어렸을 때만 해도 가족끼리 시외로 나가 놀 수 있는 테마파크가 몇 개 없었는데, 이제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조차 못할 지경이다. 물론 다양한 테마파크들은 제주의 즐길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테마파크들의 '테마'가 중복되었고, 질 낮은 컨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난립한 테마파크들을 보며, 나는 문득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쉽게 말하자면 '복제의 복제'라는 뜻이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작품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같은 마릴린 먼로의 사진들에 저마다 다른 효과를 부여하여 주욱 나열했을 때, 마릴린 먼로는 원본이고 마릴린 먼로의 사진은 복제다. 그리고 그 사진을 다시 복제한 것은 시뮬라크르다. 하지만 시뮬라크르끼리는 서로 똑같지 않다. 각자에게 다른 효과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시뮬라크르는 양면성을 갖는다. 시뮬라크르는 원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인 '아우라'를 부식시킨다. 그러나 대신 끊임없는 자기복제와 재창조를 통해 대중에게 친근히 다가온다. 모나리자의 원본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지만 우리는 그곳에 가지 않아도 티브이에서, 인터넷에서, 거리의 광고지에서 쉽게 모나리자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관광업에서 시뮬라크르는 역기능만을 발휘하는 듯하다. 제주 곳곳에 필요이상으로 들어선 카트장들을 예로 들어보자. 카트장은 세계 곳곳에 널려있다. 세계의 다른 카트장들과 아무런 차별성도 내세우지 못하는 제주의 카트장들은 그저 '카트를 타는 곳'이라는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카트를 타러 제주에 오지 않는다. 관광객들에게 카트장들은 그저 그런, 스쳐지나갈 뿐인 '킬링타임용' 관광지일 뿐이다.

올림픽경기 마저도 3D로 현장감있게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시대다.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것, 다른 곳에서도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들여놓는다고 해서 제주에 굳이 찾아올 관광객은 없다. 그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오로지 제주에서만 볼 수 있고, 제주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먼저다. 눈 앞의 이익을 좇으려 뜬금없는 기획을 가진 테마파크들에게 마구 허가를 내주어 제주 곳곳에 벌건 흙을 파내고 제주만의 풍광을 훼손하는 일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해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제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도민들의 결집력으로 유네스코 3관왕과 세계7대자연경관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섬 전체가 아우라로 가득찼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데도 도청은 좀 더 손쉬운 돈벌이를 위해 테마파크의 건립허가를 쉽게 내주고 있다. 도청이 자신있게 내걸었던 'Only Jeju'라는 슬로건이 왜 모두에게 외면당했는지 도청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양은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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